“징벌적 손배제 과도하다”더니… 민주당, 6월 이후 급추진

입력 2021-08-23 00:05 수정 2021-08-23 00:05
징벌적 손해배상제(손배제)를 골자로 한 더불어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언론법)이 충분하고 합리적 의견 수렴절차 없이 졸속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민주당은 1년간의 신중한 논의를 거친 법안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 징벌적 손배제 등 독소조항이 본격 논의된 것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그것도 집중적으로 논의됐던 것은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참석하지 않은 상태였다.

국민일보가 22일 제21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언론중재법을 안건으로 상정한 지난해 7월부터 최근까지 문체위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2월만 해도 이 법안에 “숙려기간을 거쳐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미디어혁신특별위원회에 강성 친문 김용민 의원이 위원장으로 임명된 5월 말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이때는 4·7 재보궐선거 이후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로부터 당이 개혁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당이 본격적인 대선 국면으로 돌입하던 시점이다.

언론법이 문체위 테이블에 가장 먼저 올라온 것은 지난해 7월 27일이다. 징벌적 손배제를 골자로 한 정청래 의원 안 등 언론법 2건이 상정됐다. 이후 지금까지 언론법 관련 회의는 전체회의 8회, 법안소위는 6회 열렸다. 법안소위는 한 차례 국민의힘 없이 진행됐다. 지난해 11월에도 법안소위가 두 차례 열렸지만 공연법 등 문화·관광 관련 법안이 주로 논의됐다.

언론법에 대한 집중 토론이 벌어진 것은 지난 2월 25일 법안소위였다. 이 회의에선 그러나 현재 논란이 된 징벌적 손배제나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은 중점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회의 시간은 대부분 정정·반론보도 게재 방식(김영호), 기사열람차단청구권(신현영), 언론중재위원 확대(김영주) 등에 할애됐다.

이때 거의 유일하게 징벌적 손배제 도입을 강하게 주장했던 사람이 이상직 의원이다. 당시 이스타항공 체불임금, 편법승계 논란으로 언론보도 중심에 있었던 그는 “기자 개인의 일탈로 인한 피해가 너무 크다”며 손배제를 주장했다. 하지만 이병훈 민주당 의원은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현재로서는 좀 수용하기가 곤란하다. 숙려기간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유정주 의원도 “이 문제는 보다 긴 시간을 두고 체계성을 갖춰야 한다”고 거들었다.

지난 4월 1시간가량의 짧은 전체회의를 마지막으로 언론법 관련 회의는 2개월간 열리지 않았다. 4월 7일 민주당 재보선 참패, 5월 2일 전당대회 등이 이어졌고 5월 21일 당 미디어특위 위원장에 김용민 최고의원이 임명됐다.

당 미디어특위는 6월 17일 첫 보고회에서 ‘가짜뉴스’에 대한 징벌적 손배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전문가 공청회가 있던 6월 30일부터 논의가 급진전되기 시작한다. 민주당은 이때부터 문체위 법안소위, 안건조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일사천리로 언론법 처리를 강행한다.

언론중재법의 대표적 독소조항인 징벌적 손배제 및 고의·중과실의 추정 요건, 손해배상액 산정 기준 등 현재 논란이 되는 쟁점 대다수는 국민의힘 의원들 없이 열린 7월 6일 법안소위에서 논의됐다. 대부분 김용민 최고위원 안에 담긴 내용들이다.

이날 만들어진 민주당 대안에 국민의힘은 "졸속 입법"이라고 반발했다. 민주당은 그러나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숙의 과정을 거쳤다"며 일부 조항을 삭제 또는 수정한 최종안을 지난 19일 전체회의에서 의결했다. 회의록에 나타난 논의 과정을 본다면 각계각층이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는 조항에 대해 여야가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셈이다.

일각에서는 송영길 지도부의 중도 외연 확장 행보, 윤호중 원내대표의 법사위원장 양보 등으로 악화된 지지층 민심을 돌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언론법을 강행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송 대표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 사과, 윤 원내대표의 원 구성 협의 시점과 공교롭게 맞물린다는 것이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22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2월 소위에서 논의할 당시만 해도 징벌적 손배제는 큰 쟁점이 아니었다"며 "김 최고위원이 미디어특위원장으로 임명된 뒤 주요 쟁점으로 부상했다. 그러고는 자기들끼리 안을 만들어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말했다.

이가현 강보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