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음악가 소녀와 ‘들을 수 없는’ 가족들, 그들의 선택은

입력 2021-08-23 04:02
영화 ‘코다’에서 루비 가족이 포옹하고 있는 장면. 주인공 루비(왼쪽에서 두 번째, 등 진 모습) 외 가족은 모두 청각 장애인이며 실제 청각 장애 배우들이 연기했다. 판씨네마 제공

“신이 방귀 냄새를 만드신 이유를 아니? 못 듣는 사람도 즐길 수 있으라고.”

프랭크(트로이 코처)의 한 마디에 얼굴을 찌푸린 채 코를 막고 있던 딸 루비(에밀리아 존스)의 웃음이 터진다. 이 집에서 소리를 듣는 사람은 루비뿐이다. 식사 자리에서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건 예의가 아니지만 데이팅 애플리케이션 틴더는 볼 수 있다. 다함께 들을 수는 없지만 다함께 볼 수는 있기 때문이다.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 내다 팔며 생계를 잇는 루비 가족은 주머니 사정은 넉넉치 않지만 쾌활하다. 아빠와 엄마는 자식들이 민망해할 정도로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고, 오누이는 티격태격하며 아빠의 일을 돕는다. 수화로 소통하는 것 말고는 여느 가족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을 이어간다.

어느날 짝사랑하는 남학생 마일스(퍼디아 윌시-필로)를 따라 학교 합창단에 가입한 루비는 버클리 음대 출신의 음악 교사 미스터 V(에우헤니오 데르베스)를 만난다. 미스터 V는 가정환경 때문에 친구들에게 놀림받고 주눅들어 있던 루비에게서 천부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버클리 음대 진학을 돕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루비가 꿈을 찾아 떠나면 가족은 위기에 빠진다. 루비는 듣지 못하는 가족을 세상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다. 생선 가격을 흥정하는 일도, 해안경비대의 무전에 답하는 일도, 병원에 가는 일도, 가족을 무시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일도 모두 루비의 몫이다. 루비는 17년 인생에서 한 순간도 꿈을 꿀 여유가 없었다.

영화는 중간중간 들리지 않는 가족들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준다. 루비의 합창단 공연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신나게 음악을 즐긴다. 다음 순간 모든 소리는 사라지고 루비의 가족들이 당황한 채 두리번거리는 장면이 이어진다. 루비가 마일스와 감미로운 듀엣곡을 부를 때, 청중들은 감동하고 미소짓고 눈물을 훔친다. 듣지 못하는 청중 프랭크는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딸의 재능을 본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코다’는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의 작가 션 헤이더가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특히 영화 ‘라라랜드’의 음악 감독을 맡았던 마리우스 드 브리스가 참여해 기대를 모았다.

감독은 농인 배우들을 캐스팅해 눈길을 끌었다. 오스카 역사상 최연소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농인 배우 말리 매트린이 루비의 엄마 재키 역을 맡았다. 루비의 아빠 프랭크 역은 농인 배우 트로이 코처가 맡았고, 루비의 오빠 레오 역을 한 다니엘 듀런트 역시 농인이다.

농인 역할이라도 청인 배우에게 맡기는 것이 당연시됐던 관행에서 벗어난 캐스팅은 연기의 진정성과 완성도를 높였다. 동시에 영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한 발 나아갔다는 평가도 받는다.

‘코다’는 올해 37회를 맞은 선댄스 영화제에서 드라마틱 부문 4관왕(심사위원 대상, 관객상, 감독상, 앙상블상)을 휩쓸었다. 여성감독 연출, 여성작가 각본, 여성배우의 비중 세 항목을 평가하는 ‘트리플 F등급’도 획득했다. 영화 리뷰 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도 신선도 지수 95%를 달성하며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영화 제목인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는 청각 장애인 부모를 둔 청인을 의미한다. 악곡의 종결부를 뜻하는 음악 용어이기도 하다. 영화의 결말에서 루비와 가족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임세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