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나의 작은 효용들

입력 2021-08-23 04:05

최근 읽은 베스트셀러 소설 중에 인생의 후회를 다룬 이야기가 있다. 아무것도 제대로 이룬 게 없다는 비관으로 자살을 시도한 여주인공이 크고 작은 후회의 지점으로 돌아가 선택을 되돌렸을 때 달라지는 인생을 경험해 보는 내용이다.

나의 경우 형제도 많고 자녀의 인생에 크게 개입하지 않는 부모를 둔 덕으로 일찌감치 인생의 문제들을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해 왔다. 나름 충분히 생각하고 내렸던 결정들이라 후회란 감상에 많이 빠지진 않았어도 어느 소설가 말처럼 선택은 옳았지만 결과가 바람직하지 않았던 일들이 쌓이며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궁금한 지점이 많아졌다.

소설은 인생에서 하나의 선택이 바뀌면 그에 따른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만 그 삶에도 다른 결의 슬픔과 회한들이 부산물로 따른다는 걸 보여준다. 어떤 삶을 살았건 기쁜 일과 안타까운 일이 함께 따르는 치열한 인생이긴 마찬가지일 테니 후회로 자신이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이제 안 해도 된다.

책을 그만 덮어도 될 것 같던 지점에서 또 다른 울림을 만났다. 주인공의 사소한 선의와 돌봄을 받던 사람들이 그게 사라지자 불행해진 모습을 보인 거였다. 덕분에 나의 작은 쓸모들에 주목하게 됐다. 큰 성과에만 주목할 땐 이룬 게 없어 보였는데 작은 성과들을 떠올리니 다른 사람들에게 제법 많은 보탬이 되는 괜찮은 사람으로 변했다. 그동안 고맙고 감사하다고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해줬어도 내가 목표했던 성과를 이루지 못해 작은 소리들이 들리지 않았다.

조금 부끄러운 상상이지만 내가 없었더라면 꽤 불쌍했을 사람들을 떠올리며 내가 충분히 좋은 사람이라는 자존감과 자신감이 회복됐다. 사람들은 타인의 존재에 대한 고마움을 잘 깨닫지 못한다. 가족 간에는 더 그렇다. 게다가 한국 사람들은 알아도 그런 말을 해주는데 미숙한 편이니 스스로라도 적극적으로 나의 가치를 찾을 일이다.

윤소정 패션마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