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자영업자들 “이건 죽으란 얘기”… 거리로 나설 준비

입력 2021-08-21 04:03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에서 7년째 주점을 운영하는 40대 이모씨는 20일 문 앞에 붙어 있는 영업시간 안내판을 떼어냈다. ‘오후 10시’를 ‘오후 9시’로 다시 수정해야 했다. 이씨는 “빚을 돌려막으며 겨우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영업시간을 더 단축하라는 조치는 ‘폐업하라’는 말과 다를 게 없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전 국민 대상으로 확대하자 ‘조금만 버티면 된다’는 생각으로 근근이 버텨왔던 터였다. 폐업 갈림길에 선 그는 “어떻게 나라가 국민에게 이럴 수가 있나. 죽으라는 말과 다를 게 없다”며 연거푸 마른세수를 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이날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자 2명을 포함해 4명까지 식당·카페를 이용할 수 있도록 사적모임 인원 제한을 조건부 완화하면서도 현행 거리두기 단계를 2주간 연장하고 4단계 지역의 식당·카페 영업시간을 오후 9시까지로 단축하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자영업자는 국가에 의해 철저히 무시당했다. 이번 조치는 자영업자를 국민으로 여기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비대위는 확진자 발생 현황을 분석해 ‘업종별 방역수칙’을 정립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비대위는 전국 단위의 자영업자 차량시위 개최를 예고했다. 현재 지역별로 오픈채팅방을 만들어 시위 일정 등을 결정하는 투표를 진행하며 향후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각 채팅방에 모인 자영업자들은 “(생활고로) 죽기 전에 (힘들다고) 외쳐보기라도 하고 싶다”는 말을 주고받으며 당국의 조치를 규탄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50)씨는 “다들 생계가 달려 있어 조직적인 시위에 나서지 못하니 우리만 자꾸 당하는 것 같다. 이럴 바엔 시위라도 해야겠다”고 말했다.

지난해만 해도 자영업자 사이에서는 방역에 도움이 된다면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정부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고 입을 모은다. 당초 ‘짧고 굵게’ 끝내겠다는 방역 강화 조치가 1년 넘게 지속되자 실효성에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효과 없는 방역 강화 조치의 피해를 고스란히 자신들이 떠안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영업 제한 시간이 오후 9시에서 10시로 한 시간 늘어났을 때 자영업자 사이에선 “그나마 숨통이 틔었다”는 반응이 나왔었다. 하지만 다시 9시에 문을 닫게 되자 곳곳에서 “저녁 식사 시간이 한 시간 줄어드는 게 (방역에) 어떤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에게는 목숨이 걸린 일”이라는 울분이 터져 나오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는 김모(61)씨는 “손님 대부분이 야간 택시 기사인데 식당 문을 1시간 일찍 닫으라는 통보는 장사를 접으라는 얘기”라고 토로했다.

올해 사정은 지난해보다 악화해 오후 9시 영업 제한에 대한 체감 정도도 달라졌다고 한다. 경기도 용인에서 브런치 카페를 운영하는 40대 이모씨는 “오이 가격만 2배가 뛰는 등 원자재 가격이 무섭게 올랐고 최저임금도 상승해 비용이 크게 늘었다. 폐업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백신 인센티브’도 현장 혼란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씨는 “가뜩이나 손님이 귀한데 백신 접종 증명서가 없다는 이유로 내쫓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접종 여부를 일일이 검사하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박민지 최지웅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