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벤츄라감리교회를 담임할 때는 그 지역에 한인이 600여명밖에 되지 않았다. 워낙 오래된 도시라 새로 유입되는 한인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한인들은 오히려 기회가 있다면 밸리나 로스앤젤레스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교회 부임 후 하나님께서는 큰 은혜를 부어 주셨다. 새 가족이 매주 한두 명씩 등록했는데, 6개월 만에 70여명이 등록했다. 장년만 160명이 됐다.
벤츄라감리교회 부흥의 원동력은 예배에 있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예배 전 중보기도회’에 있다고 생각한다. 작은 교회의 경우 예배 전 목회자가 할 일이 많고 분주하다. 하지만 기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내고 기도회를 시작했다. 그랬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은혜와 기쁨으로 충만해지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모든 예배 전 기도회를 가졌다. 그랬더니 예배시간마다 하나님의 임재가 부어졌다. 성도들의 마음가짐도 확연하게 달라졌다.
토요일 새벽은 세대를 아우르는 기도의 시간으로 정하고 정성껏 준비했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토요일 새벽에 ‘온 가족이 함께하는 토요비전새벽기도회’(토비새)를 열었고, 매주 토요일 전 교인에게 안수기도를 했다. 새벽 시간마다 어린아이들이 30여명 나왔다. 작은 교회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기도의 양이 많아질수록, 토비새는 은혜의 시간이 됐다. 성도들의 얼굴도 밝아졌다. 토비새 시간에 예상치 못했던 치유의 역사도 일어났다. 1년 동안 불면증으로 고생했던 70세가 넘으신 남자 집사님이 있었다.
불면증 치유를 위해 안수기도를 하는데, 그만 황당하게 의자에서 잠들어버렸다. 잠을 이루지 못하던 분이 그 자리에서 너무나 편안하게 주무시는 것이었다. 감사하면서도 황당한 상황에 교인들과 함께 웃었던 기억이 난다. 그 가족이 얼마나 기뻐했던지 지금도 생생하다.
또 벤츄라감리교회의 새벽기도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황인수 장로님도 치유의 은혜를 입었다. 치통과 구강종양으로 고생하다가 안수기도 후 고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났다. 장로님은 감신대 선배님이라 솔직히 부담스러운 점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진심으로 교회를 섬겨주시고 목회의 오른팔이 되었다. 나는 치유사역을 하는 목회자도 아닌데, 평범한 새벽예배 시간에 치유 역사가 일어나니 모두 놀라워했다.
예배가 살아나고 기도의 양이 많아지니 성경말씀과 제자훈련에 대한 열정도 커졌다. 12주 제자훈련을 진행하는데, 젊은 미 해군 장교가 한 분 있었다. 그런데 제자반 훈련 중간에 항공모함을 타고 2주간 하와이를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다. 어쩔 수 없이 수료를 못 하게 되는 상황이 됐다. 그 이유는 2번 이상 빠지면 수료할 수 없다는 규정을 교회가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다음 주 제자반 시작 시각에 보이스톡이 왔다. 미 해군 장교 집사님이었다. 하와이에 정박한 항공모함 안에서 어렵게 와이파이에 연결해 보이스톡을 했다는 것이었다.
“목사님, 2시간 동안 보이스톡으로라도 제자반을 하면 안 되겠습니까. 꼭 하고 싶습니다.” 웬만하면 다음 기회에 할 수도 있을 텐데, 말씀을 향한 그 열정이 남달랐다. 그래서 2주 동안 2시간씩 보이스톡을 켜놓고 제자반을 진행했다.
성도들의 기도는 ‘40일 성전 개인기도’를 통해 점점 성숙해 갔다. 40일 동안 매일 교회에 들러서 기도제목을 놓고 각자 기도하는 영적 프로그램이었다. 성전 기도 중에도 놀라운 응답의 역사가 많았다.
국가정보기관에서 일하는 형제와 불법체류자 신분이었던 자매가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법상 정보기관 근무자는 보안상 불법체류자와는 결혼할 수 없었다. 기밀을 다루는 직업이었기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도 두 사람은 ‘구하라, 그러면 주신다고 했으니 기도해보자’라고 결단했다. 두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40일 성전기도를 작정했다. 그들은 매일 교회에 나와 기도했다. 정말 마지막 한줄기 소망을 잡는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상사가 두 사람의 안타까운 사실을 듣고 장시간 회의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미 정보기관 역사상 처음으로 불법체류자 신분의 자매 가족 전체에 합법적인 영주권 신분을 보장해 준 것이다. 두 사람은 감격 속에 벤츄라감리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주례하면서 얼마나 감격스럽고 눈물 나던지, 그 감격은 말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벤츄라감리교회는 안정적으로 부흥했다. 그리고 4년 6개월 만에 벤추라 시에서 가장 큰 교회로 성장했다. 2014년 어느 날이었다. 한국에서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