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선 자산 압류, 한쪽선 패소… ‘오락가락’ 강제징용 판결

입력 2021-08-20 00:04

지난 18일 서울중앙지법의 한 법정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 A씨 등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변론기일이 열렸다. 마지막 변론기일이었던 이날 재판은 순식간에 끝났다. 재판부는 “오늘로 변론을 종결하고, 다음 달 8일 판결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법정을 나온 A씨와 변호사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들 사건을 맡은 민사25단독 박성인 부장판사가 1주일 전 다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비슷한 소송을 기각했기 때문이다. 원고 대리인 전범진 변호사는 19일 “선고기일을 3주 뒤로 잡았는데, 이렇게 기일이 짧게 잡히면 재판장 결론이 서 있는 경우가 많다”며 “얼마 전과 같은 결과가 나올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같은 날 다른 피해자들에게는 배상받을 가능성이 조금 더 높아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미쓰비시중공업이 국내 기업으로부터 받을 거래대금에 대한 채권을 압류하라는 국내 법원의 결정이 나오면서다.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해당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미쓰비시는 배상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 법원이 미쓰비시의 국내 재산을 압류토록 한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 결정으로 배상받을 길이 보다 넓어졌다는 평가다.

이처럼 강제징용 관련 소송을 낸 피해자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건 소멸시효에 대한 판단 영향이 크다. 지난 1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소송이 기각된 건 “민법상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들은 2017년 2월 소송을 냈는데 재판부는 강제징용에 대한 대법원 판단이 2012년 5월 나왔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민법이 정한 소멸시효인 3년이 지난 뒤 소송을 제기했다는 판단에서다. 대법원 판결이 재상고심을 거쳐 최종 정리된 시점이 2018년 10월이므로 이때부터 3년의 소멸시효를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씨도 같은 문제에 봉착한 상태다. 이들은 2018년 10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이후인 2019년 4월 소장을 접수했다. 지난 11일 판결과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면 A씨 소송 역시 기각될 가능성이 크다. A씨 측은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일본기업 측이 새로운 주장과 증명을 내놓는 등 결과가 바뀔 가능성은 남아 있었다”며 소멸시효 기준을 2018년 10월로 봐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재판부마다 판단을 달리하는 지점은 또 있다. 지난 6월에는 한일 청구권협정을 근거로 소송을 통한 권리 행사는 제한된다(각하)는 판결이 나왔다. 반면 2018년 10월 대법원에서는 정반대 결론을 내리면서 승소한 피해자들이 미쓰비시 국내재산 압류 절차 등을 밟고 있다.

결국 소멸시효 기준과 청구권협정에 대한 판단이 대법원에서 정리될 때까지 혼란이 반복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6월 각하 판결을 받았던 피해자 중 일부는 항소해 상급심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