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금농장의 자율적 방역에 중점을 두는 ‘질병관리등급제’가 첫 발을 내디뎠다. 전체 산란계의 41% 정도가 질병관리등급제를 통해 무차별 살처분을 피해갈 수 있게 됐다. 자체 방역을 잘 하는 농장이라면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진농장 반경 3㎞ 이내더라도 예방적 살처분 대상에서 제외된다. 과도한 살처분으로 ‘계란 대란’을 초래했던 지난 겨울 상황이 올해부터는 재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6월 발표한 질병관리등급제 시범사업과 관련해 전체 산란계 농장 1091곳 중 276곳이 신청 완료했다고 19일 밝혔다. 질병관리등급제란 방역 수준이 높은 축산농장이 예방적 살처분 예외를 신청하는 제도다. 도입 첫 해인 올해는 산란계 농장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방역시설·장비를 구축하고 관리 능력을 보유한 농가라면 ‘AI 확진농장 반경 3㎞ 이내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원칙을 적용받지 않는다.
다만 확진농장 반경 500m 이내 근접 지역일 경우에는 질병관리등급제 신청 농가라도 예방적 살처분을 피하지 못한다. 해당 농장에서 AI가 발생할 경우 살처분 보상금(피해액의 80%)이 감액되는 벌칙도 감당해야 한다. 농장 스스로 방역에 만전을 기하라는 취지다.
첫 삽을 뜬 것 치고는 참여율이 높다. 이번에 신청한 농장에서 사육 중인 산란계는 모두 3024만 마리로 전체 산란계(7371만 마리)의 41%에 이른다. 덕분에 올해에는 ‘계란 공급 기근 현상’을 피해 갈 공산이 높다. 예외 없이 AI 확진농장 반경 3㎞ 이내 가금농장 전체를 예방적 살처분했던 지난 겨울의 경우 1670만9000마리가 살처분 조치됐다. 갑작스레 산란계가 급감하다 보니 계란 생산량이 부족해지며 계란값이 폭등했었다. 정부가 부랴부랴 수입산 계란을 무관세로 들여 오는 긴급 조치를 시행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질병관리등급제를 통해 살처분 규모를 적절한 수준으로 관리한다면 공급 절벽을 방지할 수 있다.
아직 풀어야 할 숙제는 있다. 방역 대책이 미흡한 사육 규모 10만 마리 미만의 산란계 농장 참여율이 저조하다. 바꿔 말하면 소규모 산란계 농장의 경우 정부가 AI를 예방할 수 있도록 마련한 방역 기준에 미달한다는 것이다. AI 피해 최소화를 위해서라도 이들의 방역 수준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시설 개선을 통해 참여를 확대할 수 있도록 계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