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인데… 지방하천 정비·국가하천 승격 ‘강 건너 물구경’

입력 2021-08-20 04:04
지난해 8월 전남 구례군을 지나는 섬진강 지류인 서시천 제방이 폭우에 무너지자 관계 당국이 중장비를 동원해 긴급보수에 나서고 있다. 국가하천에 비해 관리가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주요 지방하천을 국가하천으로 승격하는 등 개선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연합뉴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장마·홍수로 인한 지방하천 피해액이 국가하천 피해액의 12배를 웃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평균 600억원이 넘는 지방하천 피해는 정비 소홀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기후위기에 적극 대응하고 홍수 피해로부터 국민 안전을 지키려면 더 늦기 전에 주요 지방하천을 국가하천으로 승격하는 등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방하천 정비율 50%에도 못 미쳐

19일 행정안전부 국가재난관리정보시스템(NDMS)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지방하천 6180개 지점에서 피해가 발생했으며 피해액은 6962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국가하천(310개 지점)에서 발생한 피해 규모(577억원)와 비교해 12배가 넘는다.

국내 하천은 크게 국가하천과 지방하천으로 구분된다. 전국 73곳(3602㎞)의 국가하천은 국토 보전상 또는 국민 경제상 중요한 하천으로 정부가 관리한다. 올해까지는 국토교통부가, 내년부터는 환경부가 책임 주체다. 전국 3760곳(2만6252㎞)의 지방하천은 각 지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하천으로 광역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한다. 하천법을 적용받지 않는 소하천 관리는 지자체가 맡고 있다. 기록적 폭우가 쏟아진 지난해 지방하천 피해액은 1855억원으로 국가하천 피해액(289억)의 6배를 웃돌았다. 지난해 국가하천 피해액은 2010~2019년 10년간 국가하천 피해액(288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막대했음에도 지방하천 피해액이 훨씬 더 컸다.


지방하천의 피해 규모가 큰 이유는 국가하천보다 워낙 수가 많기도 하지만 ‘정비·관리 부실’ 영향이 절대적이다. 2018년 12월 기준 지방하천 정비율은 48.0%로 국가하천 정비율(81.4%)에 한참 못 미친다. 지자체가 하천 정비를 외면하고 주민 편의시설 설치에 치중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수자원 전문가들은 기후위기로 홍수 피해가 반복적으로 발생함에 따라 정부·지자체 예산을 늘려서라도 지방하천 정비율을 끌어올려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하천 통합관리’ 지자체도 원한다

지난해 여름 발생한 홍수 피해 원인을 조사한 한국수자원학회는 지난 3일 “댐 직하류 등 주요 지방하천을 국가하천으로 승격하고 국가하천의 수위 영향을 받는 지방하천 구간은 국가가 일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대규모 홍수 피해는 지방하천 정비·관리 부실과 무관치 않다는 결론이다.

환경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국가하천 기준을 만족하는 지방하천은 603곳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현재까지 73곳만 국가하천으로 지정되는 데 그쳤다. 과거 홍수 피해 사례와 홍수 발생 시 잠재적 피해 규모, 지자체 요구 등을 고려한 승격이 필요한 실정이다.

최근 김영록 전남지사는 “지방하천을 국가가 지원하는 하천으로 만들어 관리하거나 국가하천으로 전환하도록 타당성 논리를 개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지사는 한정애 환경부 장관과의 면담에서도 “지방하천을 국가하천으로 승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하천 정비사업은 그간 정부 통제를 받다가 지난해 지자체로 이양됐다. 연 1조3000억원 규모의 사업비 중 절반의 국비 지원도 내년까지만 보장된다.

지류 하천의 배수 영향 구간을 국가하천 기준에 맞춰 재정비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국가하천 설계빈도는 100~200년이다. 200년에 한 번 내릴 만한 비의 양을 감당할 수 있다는 의미다. 지방하천은 50~80년 빈도에 불과하다. 국가하천의 높은 수위가 지류 하천으로 역류하면 지방하천에서 범람·침수 등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난해 여름 국가하천인 황강은 계획 홍수위를 초과하지 않았지만 지방하천인 낙민천은 황강의 배수 영향을 받아 하천이 범람하고 제방이 붕괴했다. 제내지(제방에 의해 보호되는 지역) 침수 피해도 발생했다.

주변 고려한 설계빈도 차등화 시급

하천 주변 상황을 반영한 홍수방어등급 차등화도 개선 과제로 꼽힌다. 2018년 하천설계기준 개정을 통해 ‘설계빈도 차등화 제도’가 도입되면서 관련 근거가 마련됐지만, 하천 주변 지역의 사회적·경제적 가치를 정량적으로 평가해 홍수방어등급에 적용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인구 밀집 지역·자산 밀집 지역은 홍수방어등급 A등급(200~500년 빈도)으로 재설계하고 상업시설·공업시설·공공시설은 B등급(100~200년 빈도), 농경지 등은 C등급(50~80년 빈도), 습지·나대지 등은 D등급(50년 미만 빈도)으로 구분하는 식이다. 이와 관련해 국토부는 ‘하천 연안 특성에 따른 홍수관리제도 도입방안’ 연구 과제를 추진 중이다.

낡은 배수 통문 관리체계도 고쳐야

지방하천 관리 문제는 배수 통문 개폐 시스템에서도 드러난다. 하천의 배수 통문을 여닫기 위해서는 수문관리인이 현장에 가서 하천 수위 등을 직접 확인한 후 별도 인력을 투입해 조작·관리한다. 효율적 하천관리가 어려운 구조다. 배수 통문 관리인은 대부분 해당 지역(농촌) 주민이다. 고령화 등으로 하천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홍수 시 위험에 노출되는 한계도 있다. 관리인의 경험에 의존해 수문 개폐가 결정되는 점, 관리인 부재 시에는 대응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이에 따라 스마트 관리체계 구축이 시급한 상황이다. 이는 CCTV를 통해 실시간 하천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자동 수위계를 설치해 하천 수위에 따라 배수 통문을 원격으로 운영·관리하는 방식이다. 돌발 홍수나 국지성 집중호우에도 빠르고 효과적으로 대응해 침수피해를 줄일 수 있다. 평상시 CCTV·수위계 등을 통해 하천 상황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어 하천관리를 체계화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대한하천학회장인 박창근 가톨릭관동대 교수는 “국가하천과 지방하천은 하천법을 적용받지만 관리 주체가 각각 정부, 지자체로 구분돼 있고 소하천은 행정안전부의 소하천정비법을 따르지만 정작 관리 책임은 지자체에 있다”며 “하나의 법체계 내에서 한 개 부처가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하천관리 일원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최재필 기자 jp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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