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뭉클한 깻잎의 맛

입력 2021-08-20 04:06

편식이 심하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어릴 때 좋아하지 않거나 아예 먹지 못하던 대부분의 채소를 지금은 그래도 얼추 먹게 됐을 뿐 아니라 맛있다고 느낄 줄도 알게 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긴 시간 동안 먹지 못하다가 몇 년 전부터 완전히 좋아하게 돼버린 채소가 있는데 그것은 깻잎이다.

깻잎은 그 향도 그렇지만, 이파리에 까슬까슬 나 있는 털도 께름칙해서 어릴 때는 쳐다도 안 보던 채소였다. 채 썰어 비빔밥 위에 얹혀져 있는 것도 득달같이 건져냈고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얼큰한 탕이라도 깻잎이 들어 있으면 탕 전체에서 풍기는 특유의 향을 견디지 못해 그 음식을 먹는 것은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지만 그렇게 깻잎을 싫어하면서도 동시에 나는 그 채소를 조금 좋아하기도 했다. 깻잎조림. 나는 깻잎조림만큼은 좋아했다. 그것은 맛 때문이 아니었다. 깻잎조림은 반찬 중에 거의 유일하게 팀플레이가 필요한 반찬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아주 어릴 때부터 깨달았다. 켜켜이 찰싹 붙어 있는 깻잎을 스스로의 힘만으로 떼어낼 줄 아는 어른은 거의 없었다. 나는 깻잎을 못 먹는 시절을 보내면서도 반찬으로 깻잎조림이 나오면 그렇게 속으로 신이 났다. 누군가 깻잎조림을 향해 젓가락이 향할 때마다 어디선가 또 다른 젓가락이 나타나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좋았다. 가끔은 두 사람 모두 쩔쩔맬 때도 있었다. 그럴 때 비록 못 먹지만 조심스레 나의 작은 젓가락을 내밀어 얇은 깻잎 한 장을 떼어내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 좋았다.

손이 두 개나 있고, 손가락이 열 개나 있고, 젓가락질을 아무리 능란하게 잘하더라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 있고 그때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존재라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사실을 나는 깻잎조림으로부터 배웠다. 온갖 깻잎 요리를 와구와구 잘 먹게 된 지금 깻잎을 아직 못 먹는 누가 그게 무슨 맛이냐 묻는다면, 나는 뭉클한 맛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요조 가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