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와 과학은 진리 탐구 함께하는 친구”

입력 2021-08-20 03:04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과학과 신앙을 함께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사진은 분자 모형과 성경책. 게티이미지

“과학과 종교는 모두 필요하며, 서로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습니다. 훌륭한 과학 이론이 우리의 상상력을 넓혀주고 무언가를 이해하려는 지적 욕구를 채워주는 만큼이나, 정통 그리스도교 신앙도 놀랍고 흥미진진합니다. 과학과 종교는 적이 아니라 지식을 탐구하는 공통의 과업을 함께하는 친구입니다.”

존 폴킹혼(1930~2021)의 생애를 압축한 글로 ‘쿼크, 카오스, 그리스도교’(비아)의 표지에 새겨져 있다. 폴킹혼은 생애 전반부 이론물리학자였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수리물리학 교수로 재직했다. 1974년에 이미 영국 왕립학회 회원이 될 정도로 이론물리학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다.


과학자로 정점에 서 있던 79년 폴킹혼은 물리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82년 영국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는다. 책에서 폴킹혼은 당시를 떠올리며 “과학에 환멸을 느껴 물리학계를 떠난 것이 아니다”라며 “다만 변화의 때가 왔다고 직감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목회나 과학이나 진리를 찾고 전한다는 점에서 같은 길이라고 생각했다. 폴킹혼은 “서품을 받고 수년간 사목활동을 하며 저는 제 소명이 과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쓰는 데 있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폴킹혼은 이후 88년부터 96년까지 케임브리지대 퀸스칼리지 학장을 지냈고 97년 대영제국 훈장을 받았고, 2002년엔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했다. 빌리 그레이엄, 한경직 목사 등이 받은 바로 그 상이다. 과학과 종교의 대화를 이끈 공로다.

책의 부제는 ‘종교와 과학에 관한 질문들’이다. 주님은 존재하는지, 우리는 누구인지, 과학자도 기도할 수 있는지, 종말은 어떻게 오는지를 차분히 묻고 대답한다. 번역은 우종학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가 맡았다. 우 교수는 과학과 기독교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연구 단체 ‘과학과 신학의 대화’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옮긴이의 글’에서 “폴킹혼은 과학 지식을 얻는 과정을 설명하며 과학은 사실이고 신앙은 의견에 불과하다는 편견을 속 시원하게 깨뜨린다”면서 “나아가 섬세하게 조율된 우주의 특성을 볼 때 창조주의 존재를 믿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라고 역설한다”고 밝혔다.

제목부터 쿼크와 카오스가 나오지만 쉽고도 친절한 책이다. 쿼크는 핵을 구성하는 기본 입자로 양자 이론을 상징한다. 카오스 이론도 언급한다. 뉴턴 역학 이후 물리학자들이 강고하게 믿었던 기계론적 세계관이 사실이라기보다 의견이란 점부터 지적한다. 쿼크와 카오스의 특징은 비결정성과 예측불가능성이고 최신 물리학의 주요 발견은 바로 이 지점에 집중돼 있다. 창조주의 섭리가 녹아있는 우주에 대한 재발견, 과학으로 설명되지 못하는 지점에 대한 인정과 겸허함이 우리 시대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에게 보이는 모습이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