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주어’ 논쟁 점입가경… 당내 정권교체 회의론

입력 2021-08-19 04:02

정권교체를 사명으로 내건 국민의힘이 ‘경선버스’ 출발 전부터 비틀거리고 있다. 공당의 대표와 대선 주자가 전례 없는 전화통화 녹취 폭로전까지 벌이면서 정면충돌하고, 후보 간에 공개 사퇴 요구가 나오는 등 심각한 혼돈 상태다. 상호 불신과 갈등이 깊어지면서 당 내부에서도 “이대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는 위기감이 흐르고 있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18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제 기억과 양심을 건다. 이준석 대표의 ‘곧 정리된다’는 발언 대상은 윤석열 후보”라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저와 통화한 녹음파일 전체를 오후 6시까지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이 대표가 전날 밤늦게 자신과의 통화 녹취록 일부를 공개하자 재반박에 나선 것이다. 인공지능기술 서비스로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한 녹취록을 보면 이 대표는 당내 불협화음 문제를 얘기하던 중 “저쪽(윤 전 총장 측)이 입당 과정에서도 그렇게 해서 세게 얘기하는 거지, 지금 저희하고 여의도연구원 내부 조사하고 안 하겠습니까. 저거 곧 정리됩니다”라고 언급했다.

쟁점은 ‘저거 곧 정리된다’는 발언에서 ‘저거’가 무엇을 뜻하는지다. 원 전 지사는 윤 전 총장을 지칭한 것으로 받아들인 반면 이 대표는 윤 전 총장 캠프와의 갈등 상황을 의미한다고 맞섰다. 이 대표는 지난 17일 원 전 지사를 향해 “자신 있으면 제가 주어로 ‘윤석열’이라고 말한 바 있는지 확실히 하라”고도 했다.

원 전 지사는 “정확하지도 않은 인공지능 녹취록의 일부만 풀어서 교묘히 뉘앙스를 비틀어 왜곡하고 있다”며 “녹음파일 전체를 확인하면 대화의 흐름, 맥락 등을 다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원 전 지사의 요구에 “그냥 딱합니다”라는 페이스북 여섯 글자로 일축했다.

문제는 ‘곧 정리된다’의 주어를 둘러싼 공방이 진위 여부나 시비를 가리는 문제라기보다 해석 싸움에 가깝다는 점이다. 당대표와 후보들 간 경선 주도권 다툼 성격도 있다. 앞으로도 당 선거관리위원장 인선이나 경선 룰 문제 등에서 언제든 소모적인 감정싸움이 빚어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양측 대치 상황에 다른 대선 후보와 소속 의원들까지 가세하면서 다중 충돌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하태경 의원은 “대표 뒤통수를 치고 분탕질을 한다”며 원 전 지사의 예비후보직 사퇴까지 요구했다.

경선장이 싸움판이 될 지경이 되자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 중진 의원은 “원팀은커녕 당 지도부와 대선 주자들이 뒤엉켜 제 살 깎기 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하면 정권교체 동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 서울시당위원장인 박성중 의원은 “어제 서울시당 당직자 회의에서도 ‘대표와 후보의 설전 때문에 현기증이 난다’ ‘정권재창출은 물 건너갔다’ ‘친이·친박으로 양분돼 쫄딱 망했는데 벌써 잊었나’ 등 정권교체에 대한 당원들의 우려 목소리가 매우 높았다”고 한탄했다.

지호일 강보현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