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 취소는 부당”

입력 2021-08-19 04:06

국내에서 처음으로 추진됐던 영리병원인 제주도 녹지국제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한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개설허가 처분 취소가 적법하다는 1심 판단을 뒤집은 것이다.

광주고법 제주 행정1부(재판장 왕정옥 부장판사)는 18일 중국 녹지그룹의 자회사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유한회사(녹지제주)가 제주도를 상대로 낸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 취소처분 취소소송’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개설허가 취소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제주도는 2018년 12월 5일 녹지제주에 대해 내국인을 제외하고 외국인 의료 관광객만을 대상으로 녹지병원을 운영하도록 하는 조건부 허가를 내줬다. 하지만 녹지제주가 조건부 개설 허가 이후 3개월이 지나도록 개원하지 않자 제주도는 2019년 4월 청문 절차를 거쳐 녹지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했고, 녹지 측은 이에 반발해 소송을 제기했다. 의료법은 개설 허가를 한 날부터 3개월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를 시작하지 않으면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제주도는 이날 판결에 대해 자세한 내용을 확인한 뒤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이번 항소심 판결에 따라 영리병원 개설 논란이 재점화될 조짐이다. 녹지제주 측은 지난해 10월 1심 판결 직후 “‘내국인 진료 제한’이라는 반인륜적이고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조건을 내세워 기형적인 병원 개설 허가를 해주고 투자한 기업에 모든 책임을 미루는 것이 이해할 수 없다”며 항소를 제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영리병원 반대 운동을 벌여온 의료영리화 저지와 의료공공성 강화를 위한 제주도민운동본부가 “코로나19로 공공의료 중요성이 대두되는 시점에서 의료 공공성을 훼손하는 판결이 나왔다”며 상당한 유감을 표했다.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된 녹지병원 개설 여부는 인천과 부산 등 다른 지역 경제자유구역에서의 영리병원 설립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의료관광을 추진하는 지방자치단체들은 영리병원 개설 여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녹지병원 개설 문제는 2006년 제주헬스케어타운 조성사업에서 외국계 의료기관 설립이 추진되면서 의료 공공성을 중시하는 이들과 기업 활동의 자유를 중시하는 이들의 의견이 대립하며 큰 논란이 돼 왔다. 1심 판결에서 제주지법은 피고인 제주도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원고(녹지제주)가 내국인 진료를 제한한 제주도의 조건부 개원 허가 결정의 위법성을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더라도, 개설 허가에 공정력이 있는 이상 일단 허가 후 3개월 이내 의료기관을 개설해 업무를 시작해야 했지만, 무단으로 업무 시작을 거부했다”고 판결했다. 다만 1심 재판부는 녹지제주가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을 달아 녹지병원 개원을 허가한 것은 부당하다며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 허가조건 취소 청구 소송’에 대한 판단을 미뤄 별도 선고를 하지 않았다.

이번 항소심에서는 1심 재판부와 반대로 원고인 녹지제주의 손을 들어주면서 영리병원 개설의 불씨를 살린 셈이다. 병원 개설 허가조건으로 내건 내국인 진료 제한 문제가 쟁점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리병원은 기업이나 투자자로부터 자본을 유치해 운영하며 수익이 발생하면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구조다. 국내 의료법에 따르면 영리법인은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없고 의사나 정부, 지방자치단체, 학교법인, 사회복지재단, 의료법인 등만 비영리로 의료기관을 세울 수 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