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신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이 총에 맞아 숨졌다. 여직원은 정직을 당하고 여학생은 학교에서 쫓겨나고 있다. 탈레반은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벌써부터 이전처럼 인권을 억압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17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탈레반 대변인은 아프간 장악 이후 첫 기자회견을 열고 “이슬람 율법 안에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할 것”이라며 “취업과 교육도 허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여성 억압으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았던 과거 집권기와 달리 정상국가로 인정받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탈레반의 유화정책이 현실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탈레반 대변인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편견은 용납되지 않겠지만 이슬람적 가치는 우리의 틀”이라며 여성 권리를 이슬람 율법으로 제한하고, 의복 규율과 사회활동 등 영역에서 어느 정도까지 권리를 허용할 것인지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프간 곳곳에선 여성 억압이 다시 시작됐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폭스뉴스에 따르면 아프간 타크하르주 주도 탈로칸에서 전날 한 여성이 피투성이가 된 채 숨져 있고, 부모와 주변 사람들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진이 찍혔다. 폭스뉴스는 이 여성이 부르카 없이 외출했다가 총에 맞아 숨졌다고 보도했다.
탈레반은 이날 아프간 국영방송의 유명 앵커인 카디자 아민을 포함해 여직원들을 무기한 정직시켰다. 탈레반의 언론 담당 간부가 뉴스 채널에 나와 여성 앵커와 나란히 앉아 인터뷰하는 등 달라진 모습을 선전하는 와중에 벌어진 일이다.
아민은 “나는 기자인데 일할 수 없게 됐다”며 “다음 세대는 아무것도 갖지 못할 것이며 우리가 20년간 이룬 모든 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탈레반은 탈레반이다. 그들은 변하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두 앵커의 사례는 탈레반 점령 이후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질지에 대한 깊은 불안감을 반영한다”며 “아프간 여성들은 억압적이었던 과거로 돌아가게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프간 서부 헤라트에선 무장한 탈레반 대원들이 정문을 지키며 여학생들과 강사들의 캠퍼스 출입을 막았고, 일부 지역에선 탈레반이 여학교를 점거한 이후 폐쇄했다고 NYT는 전했다. 카불대학 여학생들은 남성 보호자와 동행하지 않는 한 기숙사 방을 나갈 수 없다는 지시를 듣기도 했다.
탈레반의 강력한 규제를 우려한 아프간 여성들은 부르카를 착용하기 시작했다. CNN은 “이들에게 부르카는 지난 20년간 누렸던 권리의 갑작스러운 박탈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2012년 탈레반의 총격을 맞고 살아남은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24)는 NYT에 실은 기고문에서 “아프간 자매들이 걱정된다”며 “지난 20년간 여성과 소녀들은 교육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 그들이 약속받은 미래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우려했다.
유사프자이는 “일부 탈레반 인사는 여성이 교육받고 일할 권리를 부정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여성 인권을 탄압한 역사를 고려하면 두려움은 현실”이라며 “역내 강국들이 여성과 어린이 보호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1996∼2001년 집권한 탈레반은 여성의 각종 사회 활동을 금지했고 교육 기회도 박탈했다.
정우진 기자 uz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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