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과 진영의 첨예한 대결이 필연적인 정치에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네거티브는 정당성을 차치하고 보면 그 효과가 탁월하다. 특정 소재로 상대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다 보면 상대는 해명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공격의 근거가 그럴듯하다면 당사자는 내상을 입게 된다.
선거 국면에서 매스미디어를 통해 네거티브를 극적으로 활용한 케이스는 존 F 케네디 사후 1964년 미국 대선에서 린든 존슨 민주당 후보의 TV 광고를 꼽는 시각이 많다. 당시 공화당 후보였던 배리 골드워터는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승리하려면 전술 핵무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는데, 존슨 측은 이를 유권자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는 쪽으로 비화시켰다. 어린 소녀가 꽃잎을 세다 곧바로 핵폭발 카운트다운으로 넘어가 지구가 파멸한다는 ‘데이지걸’ 광고는 엄청난 파급 효과를 냈고, 대중에게 골드워터는 전쟁광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선거 내내 열세였던 존슨은 이후 판세를 뒤집었다.
1988년 미 대선은 조지 H W 부시 공화당 후보의 네거티브가 주효했다. 부시는 시종일관 민주당 후보 마이클 듀카키스의 정책 실패를 부각시켰다. 정점은 흑인 수감자가 교정시설 주말휴가 제도를 통해 사회로 나왔다가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던 사건을 TV 광고로 내보냈던 것이다. 듀카키스 주지사 재임 당시 발생한 강력사건이 재조명됐고, 부시 역시 상당한 열세를 딛고 대선에서 승리했다.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둔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선 노무현 후보를 겨냥한 색깔론 공격이 이어졌다. 2007년 17대 대선 한나라당 경선은 박근혜 이명박 후보 간 유례없는 네거티브가 이어졌다. BBK·다스 실소유, 도곡동땅, 정수장학회, 최태민 목사 일가 유착 의혹 등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2012년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는 무(無) 네거티브를 선언했다. 그럼에도 양측은 4조원 재산, 고가 정장, 고가 안경 논란까지 설익은 주장과 공격을 주고받았다.
자극적인 소재의 네거티브는 쉽게 대중에게 위력을 행사한다. 근거는 명확하지 않지만 뭔가 그럴듯한 소문,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소재면 더욱 좋다. 하지만 해명이 복잡해지면 대중은 이를 듣지 않는다. 결국 네거티브에 대항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더 자극적인 네거티브로 공격하는 것이고, 그래서 선거판에선 이런 악순환이 거듭되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네거티브를 포기 못하는 이유에 대해 한 정치학자는 “사람들은 드라마와 가십을 좋아하는데 선거는 두 가지를 모두 갖췄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권 주자들이 뛰는 2021년 여름도 예외는 아니다. 여야 모두 피아 구분 없는 공격이 이어지고 있다. 여당에선 박정희 찬양, 여배우 스캔들, 형수 욕설, 노무현 탄핵 책임 공방에 이어 이젠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 경기관광공사 사장 내정을 놓고도 격한 말이 오가는 중이다. “오사카관광공사 사장이 어울린다”는 말에 “이낙연은 일본 총리하세요”라는 격한 맞대응까지 나온 상황이다.
야당은 더 기이하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후보 간 공격도 모자라 이제는 당의 대선 경선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당대표와 유력 주자가 싸우는 형국이다. 자제한다고 한 다음 또 새로 시작된다. 이쯤 되면 대권 주자와 당대표가 서로 네거티브에 몰두하고, 이 상황이 또 후보들 간의 네거티브를 부추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의힘 내에선 이러다 정작 본선에 앞서 집안 싸움에 심각한 내상만 입을 것이란 말도 나온다.
상대를 공격하는 것도 정치의 여러 측면 중 하나라지만, 여기에도 선이 있어야 한다. 숱한 전례들로 보면, 네거티브의 달콤함은 참기 어려운 유혹이겠지만 이번 대선판에선 조금만 자중해보면 어떨지. 국민들 인내심에도 한계가 있다.
남혁상 정치부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