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공화국’ 시민들을 위한 교양서

입력 2021-08-19 20:33
나이로니라는 학자가 1671년 라틴어로 발표한 ‘커피에 관한 토론: 사실과 효능’은 커피에 대한 세계 최초의 논문이다. 커피의 탄생 설화로 가장 유명한 ‘염소목동 칼디’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확인한 결과, 이 논문에 나오는 인물은 염소목동이 아니라 낙타목동이며 칼디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이 논문은 1710년 영어로 번역돼 런던에서 간행됐다(오른쪽). 푸른역사 제공

한국 커피 인문학의 시작을 알리는 책이다. 한국인이 읽을만한 대중적인 커피 교양서가 이제야 나왔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간 출간된 커피 관련 책은 번역서이거나 외국 책 내용을 소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국 작가가 쓴 커피 인문서, 한국의 커피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다룬 교양서는 찾기 어려웠다. ‘커피 세계사+한국 가배사’는 우리 시각으로 쓴 커피 이야기다. 저자인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육학과 교수는 ‘커피 인문학자’를 자처하며 지난 10년간 커피 역사를 공부해왔다.


책은 커피의 세계사로 시작된다. 국내는 물론 해외의 커피 관련 대표 저서들을 검토해 커피의 역사를 정확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정리했다.

인류가 지금 형태의 뜨거운 액상 커피 음료를 널리 마시게 된 것은 15세기 중반쯤이고 커피가 처음으로 유행한 곳이 아랍의 예멘 지역이었다는 것은 많은 고고학적 증거와 문헌 기록이 말해주고 있다. 커피를 처음 마시기 시작한 사람들은 신비주의적 이슬람 분파인 수피교도들이라는 게 정설이다. 식물을 끓여 마시는 중국의 차문화가 알려지면서 커피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추측이 유력하다. 이슬람교 도시인 메카에 1500년쯤 세계 최초로 커피하우스가 등장했다.

이슬람 음료인 커피는 베네치아 상인들에 의해 유럽으로 전해진다. 기독교 세계인 유럽의 음료는 포도주였다. 유럽인들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것은 17세기였다.

18세기 유럽에서 커피 소비가 폭발함에 따라 커피 재배지가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와 예멘을 넘어 아시아의 실론과 자바, 아메리카의 카리브해 지역으로 급속히 확대됐다. 이후 브라질에 커피나무가 심어지고 브라질은 현재 세계 커피 소비량의 3분의 1을 생산하고 있다.

19세기는 커피 대중화의 시대였다. 프랑스 파리와 오스트리아 빈을 중심으로 유럽의 카페 문화가 만개했다. 미국은 1860년대 남북전쟁 시기 군인들에게 커피를 공급했고 전쟁 후 집으로 돌아온 군인들에 의해 가정에서 커피 소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미국인이 마시는 묽은 커피라는 의미의 ‘아메리카노’가 탄생한 것도 그때였다. 미국은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세계 커피 시장의 중심이 됐다.

세계 커피사에 이어 같은 분량으로 한국 커피사가 펼쳐진다. 국내에 커피가 들어오는 초기 장면에 대한 고찰과 200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도 주목받게 된 한국형 커피 문화에 대한 설명이 돋보인다.

‘우리나라 커피 역사의 기원 고찰’이라는 논문을 발표한 저자는 천주교를 통해 한국에 커피가 들어왔을 거라고 본다. 한국에 부임한 프랑스인 신부 베르뇌 주교가 1860년 홍콩 주재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에 보낸 서신에 다량의 커피를 주문한 기록이 있다. 당시 파리외방전교회는 중남미와 동남아 포교에 커피를 활용했다. 주문한 커피가 조선 땅에 도착한 게 1861년이었으므로 이때 베르뇌 주교 주변의 신자들이 조선인 최초로 커피를 마셨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렇게 보면 한국 커피 역사는 160년에 이른다.

이들보다 앞서 1837년 마카오에 도착한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 등 조선인 신학생 3명이 그곳에서 프랑스 신부들로부터 커피를 대접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이 커피를 마신 최초의 한국인일 수도 있다.

저자는 “고종이 아관파천(1896년)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무는 동안 커피를 즐긴 것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 역사라는 주장이 오랫동안 받아들여졌다”면서 “고종이 커피를 좋아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커피를 최초로 마신 조선 사람일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썼다.

식민지배와 6·25전쟁, 군사독재 등을 거쳐온 20세기 한국에서도 커피는 대중문화와 소비생활의 중심에 있었다. 다방이나 커피 믹스처럼 한국형 커피 문화도 형성됐다.

1999년 한국에 등장한 스타벅스는 한국인의 커피 취향뿐 아니라 문화에도 적지 않은 파동을 일으켰다. 커피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게 유행이 되면서 길거리에서 음료나 음식 먹는 걸 금기시하던 문화가 사라졌다. 한국인이 테이크아웃 문화에 친숙해진 것 역시 스타벅스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커피는 2000년대 들어 ‘스페셜티’(specialty·최상의 향미를 지닌 커피)를 키워드로 한 제3의 물결 시대에 진입했다. 제2의 물결 지배자인 스타벅스가 주도한 표준화된 스페셜티, 산업화된 커피 문화를 넘어서려는 도전이 제3의 물결이다.

한국 역시 도전적이고 창의적으로 제3의 물결을 타는 중이다. 책은 커피도시 강릉, 국내 스페셜티 커피를 주도하는 바리스타들, 커피박물관 붐, 커피나무 재배 시도 등 2000년대 한국 커피사도 생생하게 전해준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