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 없는 곳서 전쟁 않겠다”… 바이든, 동맹국에 ‘역할·비용’ 메시지

입력 2021-08-18 04:02
EPA연합뉴스

조 바이든(사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철군 결정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아프간 정부가 포기한 전쟁에서 미군이 희생돼선 안 된다”며 “미국의 국익이 없는 곳에 머물며 싸우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동맹이라도 자신을 지켜낼 역량과 의지가 안 보이면 과감하게 버리고, 궁극적으로 국익을 추구하겠다는 미국의 외교 방향을 분명히 제시한 것이다. 바이든식 ‘미국우선주의’를 선언한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아프간이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에 장악된 뒤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내 직접 입장을 밝힌 건 처음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군 철수 후 아프간 정부의 급속한 패망과 혼란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프간 정치·군사 지도자들이 스스로 싸울 의지가 없어 몰락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1조 달러 이상을 아프간에 지출했다. 군대를 훈련하고 장비와 돈을 지급했다”며 “미래를 결정할 모든 기회를 줬지만, 그 미래를 위해 싸울 의지를 심어줄 수는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아프간 정치 지도자들은 (싸움을) 포기하고 나라를 떠났다”며 아프간 정부가 포기한 전쟁에서 미군이 희생돼선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철군 발표 당시 “바이든 대통령은 절대 그 용어를 쓰지는 않겠지만 아프간 철군은 ‘바이든식 미국우선주의’의 일환”이라고 평가했다.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수중으로 떨어진 지난 15일(현지시간) 카불 공항에서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현지 주민들이 미군 C-17 수송기에 발 디딜 틈 없이 빽빽이 모여 앉아 있다. 수송기에 탄 현지 주민 640여명은 카타르로 떠났다. 애초 미군은 이렇게 많은 사람을 태울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수송기 문이 반쯤 열리자 그 사이로 주민들이 필사적으로 비집고 들어와 미군은 이들을 내쫓는 대신 모두 태우는 것으로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연합뉴스

바이든 대통령은 다만 ‘테러 저지’와 ‘인권’에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수년 동안 미군의 임무가 대테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며 “경쟁자인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계속해서 수십억 달러의 자원을 아프간에 쏟아붓는 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인권이 우리 외교 정책의 중심이 돼야 한다”며 “인도적 지원은 지역 외교를 통해 계속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제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에게 일방적 도움보다는 일정한 책임과 역할을 기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이전엔 동맹이 되면 자연스레 안보와 경제 공공재를 무상으로 제공해 줬지만 이제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한국을 포함해 동맹국들은 확장된 역할과 비용을 감당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한반도 상황은 중국의 중요성으로 여전히 미국의 우선순위에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걸 너무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우리가 동맹을 잘 관리해야 하는 필요성은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손재호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