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도는 천연기념물 제170호다. 1965년에 지정됐는데 동물 식물 지형 등이 아닌 섬(천연보호구역)으로선 처음이었다. 81년에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그 무렵 국내 최초로 홍도에 쾌속 여객선이 도입돼 8시간 뱃길이 2시간대로 줄면서 홍도는 80~90년대부터 전성기를 구가했다. 2012년엔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한 한국에서 꼭 가 봐야 할 관광지 1위에 꼽혔다.
그 섬, 홍도에 이달 초 다녀왔다. 문화재청의 천연기념물 보호 활동에 동행했다. 홍도는 전남 신안군 흑산면에 딸린 섬이다. 목포항에서 흑산도를 경유하는 여객선에는 코로나19 가운데서도 여름휴가를 보내려는 승객이 적지 않았다.
섬에 도착하니 오밀조밀한 동네가 먼저 외지인을 맞았다. 홍도는 작은 타원형과 긴 타원형 두 개가 남북으로 길게 이어 붙은 개미 형상이다. 잘록한 허리 부분에 사람들이 모여 산다. 이탈리아 카프리섬 혹은 포르토피노섬을 연상시킨다. 서울 여의도보다 조금 작은 이 섬에 홍도1, 2리 합쳐 총 267세대, 480여명이 산다.
숙소에 얼른 짐을 부리곤 선상 유람부터 했다. 홍도는 해안선 길이가 20.8㎞밖에 안 되지만 섬 전체가 수직에 가까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파도의 침식 작용이 만든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가 널려 있다. 소나무 노간주나무 등 270여종 상록수와 천연기념물인 매, 노랑부리백로를 포함한 230여종 동물이 서식한다.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 칼, 물개, 형제, 병풍 등 온갖 이름이 붙은 바위와 해식 동굴 등이 눈을 호강시킨다. 독립문을 빼닮은 바위도 있다. 상록수가 자라는 사철 푸른 섬이지만 석양이 질 때면 섬 전체가 붉게 물든다고 해서 홍도라 부른다. 그러니 석양을 놓쳐서는 안 된다. “허벌 나게 구경 한번 해 봅시다”라며 운을 뗀 해설사 김삼수(61)씨는 시종 유머 코드로 설명하면서 몇 번이고 ‘천연기념물’이라는 표현을 썼다. 자부심이 묻어났다.
대형 유람선은 마을기업 소유다. 한 척당 15억짜리인 배를 주민들이 2000년부터 공동 출자해 운영한다. 현재는 6척을 운항 중이다. 2시간짜리 관광 코스의 절반쯤 지났을까. “잠깐 배를 세우겠습니다.” 김씨의 멘트를 신호 삼은 듯 횟감을 실은 ‘횟배’가 접선해왔다. 배 위에서 회를 먹는 즐거움까지 선사하는 유람이었다.
마을기업은 ‘부자 섬’이었던 홍도의 흘러간 영광의 산물이다. 홍도1리 이장 최성진(51)씨는 “90년대 군 단위 울릉도 관광객이 연 40만명일 때 리 단위 홍도는 20만명 관광객이 다녀갔다”며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했다. 시절이 좋았으니 대형 유람선 시장을 독점하던 개인 선주들이 마을 전체의 화합을 위해 양보했다”고 설명했다.
관광객 수는 2008~2009년 20만∼25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내리막길을 걸었다. 2014년 세월호 사태로 타격을 입으며 2018년과 2019년 각각 12만명으로 줄더니 지난해에는 코로나 사태가 터져 4만5000명으로 뚝 떨어졌다.
홍도는 주민 전체가 관광업(숙박, 식당, 유람선)에 종사한다. 엘도라도, 섬사람 모텔, 홍도장 모텔, 비치 모텔, 대성장, 광주회집…. 온통 식당과 모텔 간판뿐인 풍경이 관광에 목매는 홍도를 증거한다. 경기가 나빠지며 빈집도 생겨나고 있다. 위기를 타개할 묘수가 필요했다.
홍도 주민들이 신안군을 통해 문화재청에 마을 밀집 지역이라도 천연보호구역에서 해제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그래서일 테다. 문화재청 관계자와 홍도주민 대표 간 장시간 면담이 진행됐다.
“다른 지역은 민박도 침대입니다. 온돌방만 있는 관광지는 홍도뿐이래요. 우리도 침대 놓고 싶습니다. 침대 없는 모텔은 홍도 말고는 없어요.”
홍도1리 이장을 지낸 최일남(63)씨의 이야기다. 그는 “업그레이드를 위해 숙박시설을 증·개축하고 싶어도 문화재보호법이 가로막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민들은 ‘건폐율 30%, 용적률 80%(4층 이하)’를 요구했다.
이 문제는 섬이 2011년 국립공원에서 해제된 뒤 국토계획법의 적용을 받으면서 해결됐는데, 주민들은 모르고 있었다. 문화재보호법은 용적률과 상관없이 ‘4층 이하’로만 규제한다.
주민들은 마을 초입의 길이 80m 남짓한 천연 축대벽에 대한 천연보호구역 해제도 요청했다. 문화재청 황권순 천연기념물과장은 “자연성은 보존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선착장 매립 전에는 해안 절벽이었던 축대벽에는 천혜의 해식동굴도 있다. 사람들의 땅이 된 마을 초입에 유일하게 자연 그대로의 경관을 간직한 곳이라 축대벽이 없어지면 천연기념물 홍도의 경관 이미지 자체가 바뀔 수 있다. 황 과장은 “신안군은 축대벽 붕괴 위험을 언급하지만, 안전성을 담보하면서도 자연성을 유지하는 보수 공사 방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고민은 또 있다. 홍도 건축물의 80% 이상이 불법 건축물이다. 과거 국립공원과 천연보호구역으로 묶여 이중규제를 받았지만, 관광 수요가 늘자 용적률을 초과해 신·증축한 것이다. 주민 A씨는 용적률이 20%이던 85년 당시 60%로 3층 건물을 지었다. 홍도1리 이장 최씨는 “주민 대부분이 벌금을 내거나 실형을 살았다. 은행 대출을 받지 못하는 등 자금을 융통하는 데 제약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예전에 법을 어긴 건축물도 지금은 법이 바뀌었으니 양성화가 필요하다는 요구였다.
홍도가 다시 날기 위해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최씨는 “현재의 200인승 대형 유람선으로는 멀리서만 봐야 하는 한계가 있다. 과거에는 작은 나룻배로 기암괴석 동굴 안까지 들락거리며 속살을 가까이서 체험했다”며 “10∼50명 단위 소형 유람선으로 바꿔 코앞에서 비경을 보는 체험을 제공하도록 마을기업에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돌게 잡기, 주낙 낚시 등 체험 행사도 도입한단다.
최성환 목포대 교수는 “홍도는 카프리섬 못지않은 천혜의 조건을 갖고 있지만, 문화와 역사의 스토리텔링을 입히지 못했다”고 말했다. 원추리 풍란 같은 생태 말고 문화와 역사를 세일즈해야 한다며 홍도 등대, 용왕제를 지내던 당산, 몽돌해수욕장, 일제강점기 숯을 공출했던 숯가마 터, 주민의 삶 자체 등을 예로 들었다. 홍도는 효도관광지에서 벗어나 세계적 관광지로 도약을 꿈꾼다.
홍도(신안)=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