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형사사건 공개금지, 권력 비리 은폐에 악용해선 안 된다

입력 2021-08-18 04:07
법무부가 자체 훈령인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해 17일 시행에 들어갔다. 수사 중이라도 국민 알 권리 보장을 위해 필요한 경우 형사사건공개심의위원회 의결을 전제로 공보 범위를 확대하고 공개 요건을 명확화·구체화한 것은 규정 남용 소지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기소 전 공개된 형사사건과 관련, 피의자 측의 요청이 있을 경우 공개된 것과 동일한 방식·절차에 따라 반론권을 보장한 것도 진일보한 내용이다.

하지만 우려되는 대목도 있다. 검찰 수사 내용이 언론에 보도될 경우 각 검찰청 인권보호관이 진상조사를 벌여 피의사실 공표 등 범죄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면 수사 관계자에 대해 내사할 수 있도록 했는데 권력형 비리 사건에 대한 국민의 알 권리 제한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크다. 여권 인사가 연루됐거나 정치적으로 정권에 부담이 되는 사건이 보도되는 걸 막는 장치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해서다. 형사사건은 사건 관계자나 변호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언론에 보도되는데 정보 유출을 이유로 수사팀 등에 대한 내사를 벌인다면 수사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언론도 취재원의 불이익 등을 우려해 관련 보도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극단적인 경우 검찰이 깜깜이 수사를 통해 사건을 축소하고 심지어는 불기소하더라도 언론이 견제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사건 관계인의 명예나 사생활 등 인권, 무죄 추정의 원칙,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을 보호하기 위해 형사사건의 무분별한 공개를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다. 입증되지도 않은 피의 사실을 언론에 흘려 수사의 동력으로 활용하는 그릇된 행태는 더 이상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국민의 알 권리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개정 규정이 고위공직자 범죄, 권력형 비리 수사에 대한 보도를 틀어막는 방패막이로 악용돼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