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어느 아버지의 딸 사랑

입력 2021-08-19 03:05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죽은 딸을 살리려는 아버지의 간절한 사랑이 예수님을 움직이셨다는 사실을 보게 됩니다. 그 아버지는 회당장이라는 높은 관직과 상관없이 직접 예수님을 찾아와 간청했습니다.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일어나 따라가셨다”(19절)고 기록돼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살피시는 주님의 마음을 엿보게 됩니다. 믿는 이의 계속된 간청, 멈추지 않는 기도가 능력의 주님이 일하게 하신다는 걸 본문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를 늘 기억하며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에 도착했으나 이미 피리 부는 자들과 떠드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세상의 기준에선 이미 늦은 것처럼 보이는 순간입니다만 예수님께는 전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아직 늦지 않으셨던 것이죠.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절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든 문제와 상황을 주님께 간구한 뒤 이 땅의 지혜와 경험으로 늦었다고 생각할 때에라도 가장 적절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역사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물러나게 하실 때 마을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예수님께는 생명을 살리실 것이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기억할 게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과 행위는 이해할 수 없다 할지라도 결코 멸시할 것이 아니며, 심지어 우리 확신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반드시 우러러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쉽게 판단해 ‘안 된다, 부족하다, 없다’하며 부정적으로 투덜거리고 불평하기 일쑤입니다. 또 항상 불만을 토로하지만, 믿음 안에 사는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상기해야 합니다. 로마서 4장 17절에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로 증거합니다.

예수님은 비웃는 무리를 내보내신 뒤 집에 들어가셔서 소녀의 손을 잡으니 소녀가 일어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유대 풍습에 보면 환자에게 약을 주면서 “네 병에서 일어나라”고 덕담을 합니다. 그러나 그 말에는 일어나기를 바란다는 마음뿐이지 능력은 없습니다. 율법은 제사장들에게조차 시체를 그 부정한 상태로 그대로 남겨두고 거리를 두라고 했습니다. 그 상태를 치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율법에서 부정하다고 여기는 상태에 놓인 죽은 소녀의 손을 잡으시면서 생명의 주관자 되심을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인해 본래 죽은 자들, 오늘 말씀의 소녀처럼 자신의 힘으로는 죽음에서 일어설 수 없는 자들의 손을 잡으시며 일으키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치유의 역사는 그 소문이 온 땅에 퍼졌습니다. 당대에 큰 화제가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한 아버지의 딸을 향한 사랑으로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어떤 아버지의 사랑은 왜곡되고 변질한 사랑으로, 또 어떤 아버지의 사랑은 병들었음을 보며 안타까워합니다. 부모로서 자녀 세대에게 무엇을 어떻게 넘겨주고 누리게 해줘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부모이자 누군가의 자녀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며 ‘믿음의 유산’이라는 가장 귀한 것을 물려주고 가장 좋은 걸 남겨줄 수 있는 부모 세대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강윤호 목사(서울 반포교회)

◇서울 서초구에 있는 반포교회는 ‘하나님을 닮아가고 삶으로 예배합니다’라는 사명을 가지고 다음세대에게 믿음의 유산을 온전히 전수하는 비전을 모든 교인이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