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혁 기자의 ‘예며들다’] “하나님께 죄 사함 받았다”고 끝난 걸까

입력 2021-08-20 19:37
영화 ‘밀양’에서 주인공 이신애(전도연 분)가 자기 아들을 죽인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 중인 범인 박도섭(조영진 분)을 면회하고 있다. 시네마서비스 제공

2007년 영화 ‘밀양’의 한 장면입니다. 유괴범의 손에 어린 아들을 잃은 주인공 신애는 교회에 나가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뒤,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범인을 용서하고자 교도소를 찾습니다. 하지만 범인은 신애에게 사죄하기는커녕 이미 자신은 신에게 용서를 받았기에 마음의 짐을 털어냈다는 식의 뻔뻔한 모습을 보입니다. 이를 본 신애는 깊이 좌절하며 결국 신을 증오합니다.

최근 한 소식을 들으며 자연스레 오래 전 이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학대로 인해 어린 생명이 목숨을 잃은 이른바 ‘정인이 사건’ 속 양모의 근황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1심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 수감 중인 양모 A씨가 가족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되자 많은 이들은 공분했습니다. 편지 속 A씨는 반성보단 여전히 친딸의 교육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고, 편지엔 ‘죄 사함’을 의미하듯 예수님이 사람을 물에서 건져내는 모습의 삽화도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에 공분한 이유가 뭐였을지 생각해 보니 사람들이 A씨에게서 아직 진정한 의미의 반성과 회개의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았다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냐’는 기독교를 향한 비판으로 이어지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기독교에선 죄를 지은 인간을 용서해주고 그 죄를 사해주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 손에만 달려있다고 봅니다. 성경에선 오직 예수님만이 인간의 죄를 대신 해결하셨고, 인간은 자신의 죄를 사할 능력이,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능력이 전혀 없다고 말합니다. 자칫하면 이를 실제 피해를 본 이에게 용서를 구하기보다 하나님 앞에서만 회개하면 된다는 식으로 잘못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경 마태복음 5장 23~24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수님께선 아무리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다고 해도 인간관계가 바르지 못하면 하나님과의 관계 역시 바르게 맺어지지 않은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지적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선 자신의 의와 자신을 향한 예배는 다른 무엇보다 먼저 구하고 우선시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지만, 더불어 예배하러 나오는 자들 가운데 서로 그 마음 속에 원망과 정죄함, 교만과 뻔뻔함이 담겨 있다면 그것부터 먼저 풀고 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 있기 전인 구약시대에는 ‘화목제’란 방식이 있었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됐다고 생각하면 무흠한 가축을 제물로 대신 드리며 속죄하는 것입니다. 화목제를 드리며 죄를 사해주신 하나님 은총에 감사하는 것이 본래 목적이지만, 그 속엔 화목제를 드릴 때 그 제물을 그동안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나 이웃과 함께 나눠 먹으며 서로 화해하란 하나님의 뜻도 담겨 있었습니다.

이처럼 서두에서 전한 사례 속 살인범과 A씨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과 동시에 피해자에게 진심 어린 용서를 구했어야 합니다. 만약 그들이 제대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다면 하나님께선 그들에게 ‘너의 죄로 인해 아픔을 겪었을 이들의 마음을 살피고 진심 어린 용서를 구하라’는 마음을 주셨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진심이 하나님의 마음에 닿았다면 하나님께선 진정한 용서를 보여주셨을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피해자들의 마음에도 하나님 자신이 직접 주시는 위로를, 이 세상 누구도 줄 수 없는 평안을 허락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주시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영원한 구원과 평안함을 얻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자 은총이며, 기독교가 가장 중요시하는 성경 말씀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