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 선교사 여름 휴양지… ‘예배 회복’ 간절함 담아

입력 2021-08-20 19:37
장상길 목사가 경기도 남한산성 내 ‘남한산성 말씀과 기도의 집’에서 ‘한강 변 거리 두기 1인 예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2일부터 일주일간 서울 여의도, 잠실 등 8개 지점에서 온라인을 활용한 예배를 진행한다.

인천 송도신도시 주사랑교회 장상길 목사는 요즘 남한산성 행궁 옆 한 한옥에서 구슬땀을 흘린다. 한정식집이었던 한옥을 매입, ‘남한산성 말씀과 기도의 집’으로 꾸며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도와 섬김, 예배를 회복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이 공간에 담겼다. 그는 공사 주변을 정리하는 작은 일을 할지라도 인부들과 같이 땀 흘리고 싶어했다.

“국민일보를 통해 남한산성이 조선에 온 초기 선교사들의 여름 수양 선교지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제2대 제중원장(현 세브란스병원) 헤론(1856~1890) 선교사가 한양 도성에 퍼진 전염병을 치료하다 뒤늦게 이곳에서 열린 선교사 수양회 참석 중 별세했다는 얘기에 너무나 빚진 마음이 들었습니다. 교인들에게도 헤론 선교사의 영광된 순직을 전하고 합심 기도하자고 했어요. 기도 가운데 이렇게 터를 마련한 것은 이끄심이라고밖에 해석이 안 됩니다.”

헤론은 전염병 퇴치 사역 중 전염병에 감염돼 고열에 시달리다 남한산성 빈집에서 죽었다는 설이 있다. 후송돼 제중원에 옮겨져 죽었다는 얘기도 있다. 그때 후배 선교사 모펫과 게일 등이 남한산성에서 그를 돌봤다.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인 남한산성을 조선 임금이 몽골군에 항복한 치욕의 땅으로만 인식하고 있잖아요. 이곳은 한경직 목사님의 우거처도 있고, 조선 말 을미의병 구연영 목사가 마지막 항전한 곳이기도 합니다. 의병장이었던 구연영은 영적 전쟁의 지도자가 되기 위해 훗날 목사가 되셨죠. 그리고 아들 구성서 전도사와 함께 일제에 저항하다 순교하셨어요.”

장 목사는 이 기도의 집 1층 일부를 ‘남한산성 기독교문화센터’로 꾸밀 예정이다. 헤론 선교사 등 남한산성과 관련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관광객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저는 지금도 ‘한국알리야운동본부’를 통해 하나님 백성의 영적 부흥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알리야란 히브리어로 ‘올라감, 돌아감’을 의미합니다. 중앙아시아 이스라엘 민족 300여명을, 한국인인 우리 교인 등이 도와 고토로 귀환하게 했지요. 지금 우리에게도 이처럼 영적 ‘알리야’가 필요합니다. 신앙의 정체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펜데믹 상황이라 예배드리기가 어렵다고 해서 주님을 향한 기도까지 느슨해져서야 되겠습니까.”

해 질 녘 남한산성 산기도 모습.

그는 남한산성에 묵을 때면 산성 정상에 올라가 산기도를 한다. 멀리 서울 잠실 타워가 들어오고 서울 시내가 불야성이다. 그는 손을 들어 하나님 축복받은 우리 민족이 그 은혜를 잊지 말고 하나님께 다시 돌아갈 것을 간구한다. 헤론과 한경직 목사 등 기도의 인물을 보내셔서 우리 민족에게 올라감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이라고 강조했다.

“오늘 우리는 시편 137편 1절 ‘우리가 바벨론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등지고 세상 즐거움에 빠져 산 결과 바빌론의 포로가 돼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냈잖아요. 우리가 지금 시온을 떠나 헤매다 울어야 하는 신세가 됐어요. 지친 심령들이 갈 곳이 없어요.”

장 목사는 이를 위해 ‘국가회복을 위한 한강변 거리 두기 1인 예배’를 진행한다. 22일 주일 밤부터 7일간 오후 5~8시 여의도 잠원 잠실 이촌 뚝섬 망원 신반포 천호 등 한강 고수부지 강가에서 5m 간격을 두고 기도와 찬양의 시간을 갖는다. 휴대전화를 통해 장 목사와 초청 설교자들이 이 예배를 이끈다.

“나부터 울고 구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세계는 지금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닙니다. 공중 권세와 싸움입니다. 그 권세를 이기는 길은 거룩한 예배입니다. 우리 부모 세대들이 산기도와 구국 기도로 가정과 나라를 일으켜 세우며 예수 앞으로 나갔습니다. 어두움의 영은 혈과 육의 싸움으로 쉽게 물러나지 않아요. 위정자와 백성을 위해, 자꾸 흐트러지는 나 자신을 위해 깨어 기도하는 것만이 영적 안식을 얻는 길입니다. 코로나19를 물리칠 때까지 낙동강 금강 영산강 등으로 확대해 가며 ‘강가 거리 두기 1인 예배’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장상길 목사는

전남 고흥 바닷가 마을 가난한 농사꾼 아들로 태어나 시골교회에 다니면서 꿈을 키웠다. 상경해 성경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고학 끝에 신학생이 됐다. 안양대·연세대 신학대학원 졸업. 1991년 인천 주안역 부근 지하개척교회 사역을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1990~2000년대 인천 노숙인이 모두 주사랑교회에 몰릴 정도로 돌봤다. 기아대책 본회 이사, 한국알리야운동본부 대표 등 역임.

광주=글·사진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