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폭염에 갇힌 쪽방촌, 고립감에 더 힘겹다

입력 2021-08-18 03:01
대전 벧엘의집 관계자와 자원봉사자들이 지난 6월 대전역에서 벌인 거리급식 행사. 당시 벧엘의집은 거리급식을 찾는 이들에게 도시락을 줬지만 현재는 도시락 대신 컵라면을 전달하고 있다. 벧엘의집 제공

“거리급식이 짜임새 있게 돌아가도록 하는 데 20년 넘게 걸렸어요. 그런데 코로나19 탓에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에요. 처음 시작할 때처럼 머리 아픈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어요.”

원용철(56) 목사는 지난 11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한숨 섞인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원 목사는 기독교대한감리회 남부연회 사회선교센터인 대전 벧엘의집 담당목사다. 그는 1998년 12월부터 대전역 거리급식을 통해 사회 선교의 사명을 실천하고 있다.

원 목사가 한숨을 내쉰 건 거리급식이 차질을 빚고 있어서다. 거리급식은 오랫동안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 저녁 8시 노숙인이나 쪽방촌 주민을 상대로 식판에 밥과 국, 반찬을 담아주는 형태로 진행됐다. 하지만 코로나19 탓에 특정 장소에 많은 인원이 모여 식사하는 게 불가능해지면서 올해 초부터 도시락을 전달하는 것으로 갈음해야 했다.

문제는 상황이 갈수록 나빠졌다는 데 있다. 도시락은 외부 업체에서 대량 구매하는 방식이라 비용 부담이 컸다. 벧엘의집은 지난 6월까진 한 대기업의 후원금으로 비용을 충당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원 목사는 백신 접종 속도로 봤을 때 8월부터 코로나19 확산세가 수그러들면 도시락보다 저렴한 ‘식판 배식’이 가능해질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코로나19 상황은 7월부터 더 심각해졌다. 궁여지책으로 떠올린 게 원 목사가 20여년 전 처음 거리급식 사역을 시작할 때 노숙인들에게 전달한 컵라면이었다. 그는 “우선 컵라면으로 8월을 버텨보자는 생각으로 현재는 컵라면을 나눠주고 있다”고 했다.

“도시락 급식에 필요한 비용이 월 900만원이라면 컵라면은 200만원 수준이에요. 여윳돈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오로지 돈 때문에 도시락 급식을 컵라면으로 바꾼 건 아니에요. 식판이나 도시락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골치 아픈 부분이 너무 많았어요. 대표적인 게 시민들의 민원이에요. 가령 식판 배식할 때 신고를 당한 적도 있어요. ‘거리급식 참가자들이 거리두기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면서 사진을 찍어 저희를 신고했거든요.”


노숙인이나 쪽방촌 주민들은 원 목사를 ‘왕초’라고 부른다. 원 목사(사진)는 “거리급식을 처음 시작할 때 (거지왕 김춘삼의 삶을 다룬) 드라마 ‘왕초’의 인기가 대단했다. 당시 노숙인 형제들이 나를 보면 ‘우리 왕초’라고 부르던 게 언젠가부터 내 별명이 돼버렸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들려주었다.

“제 소원은 두 가지예요. 제발 코로나19와 폭염이 빨리 수그러들었으면 좋겠어요. 요즘 노숙인 형제들이나 쪽방촌 주민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뭔지 아세요? 바로 고립감이에요. 무더위 쉼터들은 파행적으로 운영되고, 은행에 가서 더위를 피하려 해도 눈치가 보이는 세상이 돼버렸어요. 삶이 너무 열악해진 거죠. 제 궁극적인 꿈은 벧엘의집이 필요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인데, 요즘 상황을 보면 아직 그 꿈을 이루기 힘들 거 같아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