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8월의 크리스마스

입력 2021-08-18 04:06

요즘 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다. 아직 여름날의 태양이 머리카락을 몽땅 태워버릴 기세로 뜨거운데도 말이다. 그 이유는 단 하나다. 올해는 생애 처음으로 유럽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때문이다. 그것도 내가 가장 사랑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말이다. 물론 여행이 아닌 시집 준비 때문에 온 상황이라서 혼자 외로이 크리스마스를 보낼 예정이지만 그래도 괜히 설레어 지금부터 그날을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는 중이다.

흔히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하면 아름다운 상황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할 테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그날을 지나치게 아름답지 못하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난 아름다움이 두렵다. 이게 나의 유일한 병이다. 아름다운 상황이나 사람을 마주하게 되면 그것이 사라지게 될 앞날을 앞서 상상하며 그리워하고 쓸쓸해 슬퍼한다. 원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날을 만들기 위해 기도해보고 돈도 써보고 백방으로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결국 하루치의 분량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고, 그 하루가 지나버리면 평생 그리워하며 가슴 아파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뒤로는 아름다움이 조금 두렵다.

그럼에도 갈망한다. 나의 본능이다. 어릴 때 혼자서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떠났던 지난날, 히말라야에서 밤하늘에 뜬 수많은 별을 향해 소원 빌었던 지난날들은 지나치게 아름다웠기에 오늘의 나를 그리움으로 괴롭힌다. 거창한 추억뿐만이 아니다. 요리하고 계신 어머니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보았던 기억이라던가, 친구들과 웃으며 떠들었던 기억들도 그리움을 이용해 지금의 나를 아프게 만든다. 그리움은 나를 자다가도 눈물 흘리게 만든다. 그럼에도 아름다움 앞에서 다시금 용기를 내본다. 부다페스트에서 보내게 될 크리스마스를 미소지으며 준비해본다. 분명 나중에 그리워서 울겠지만 말이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