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노동 현장 비춰… 관객 자신의 문제로 느껴보세요”

입력 2021-08-17 04:02
김정근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언더그라운드’ 포스터. 아래 사진에는 한 비정규직 열차 정비공이 지하철을 점검하고 있다. 시네마 달 제공

19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언더그라운드’는 지하철에서 일하는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자부심과 부끄러움,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을 그린다. 기관사, 청소 노동자, 터널 관리공, 철도 정비공, 관제실 직원 등이 익명으로 출연한다.

이 영화를 연출한 김정근 감독은 한진중공업 사태를 다룬 ‘버스를 타라’ 등 전작에서 노동조합에 주목했는데, 신작에서는 노동 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김 감독은 지난 15일 인터뷰에서 “한국의 노동 영화들이 개인의 사연에 중점을 두고 빌런(악당)을 명확하게 한 뒤 투쟁을 그려왔다. 이번 영화에서는 관객들이 자신의 문제로 느끼길 바랐다”며 “개인의 서사가 지워지면서 노동의 구조나 사이클이 좀 더 명확해졌다”고 설명했다.

지하의 노동을 별다른 설명 없이 묵묵히 보여주면서 감독은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의 현장실습 과정을 사이사이에 끼워 넣었다. 한 실업계 고등학생이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딱 봐도 구분이 된다”라고 말하는 순간 현장에 배어있는 노동의 위계가 명확해진다. 그 학생은 터널에서 걸어 다니는 위험을 감수하는 건 비정규직, 열차를 타고 있는 사람은 정규직이라고 쉽게 알아챈다. 한 비정규직 정비공은 작업 중 다친 몸을 사비로 치료했다며 “산재 처리를 하면 정말 그 회사 이미지가 나빠지는 거냐”고 묻기도 한다.


김 감독(사진)은 “영화가 논쟁을 촉발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걱정하는 마음을 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학생들의 이야기가 없었다면 어른들의 논쟁만 다루면서 편협해질 뻔 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간극은 크지만 무인화라는 흐름 앞에서 그 간극도 의미를 잃어버린다. 한 정규직 기관사는 영화에서 “기관사는 외주화 바람에도 끄떡없을 줄 알았는데 무인화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한다. 김 감독은 “기관사를 제외한 정규직들의 인터뷰는 영화에 쓰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안정된 일자리를 가진 그들의 말에는 물기가 없고 건조했다”면서도 “하지만 정규직 중에 가장 돈을 많이 받는 기관사가 무인화에 쓸려서 넘어가는 걸 보고 (그들을 비판하는 게) 소용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비정규직 문제를 개인의 능력 탓으로 돌리는 분위기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얻은 것들이 공정하며 스스로의 노력으로만 빚어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면서 “내가 얻은 것들이 공정한 것이라는 착각을 내려놓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비정규직 선로 정비 반장은 “정비공들이 일을 배울만하면 그만둔다. 자부심을 줘야 사람들이 일한다”고 토로한다. 김 감독은 “지하철 선로 정비는 비정규직이 담당하는데 정규직이 대체할 수도 없다”면서 “그분들을 정규직화하는 책임도 정규직에 있는 게 아닌가. ‘노블리스 오블리주’ 같은 가진 자들이 베풀었던 관용의 정신이 중산층에도 필요한 게 아닐까”라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다큐와 노동에 천착해왔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성룡 영화처럼 몸 쓰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현실에서 아크로바틱한 건 제게 육체노동이었다”고 말했다. 또 “지하철 노동자 영화를 만들겠다고 배우들을 섭외하자면 제작 비용이 너무 많이 들 것”이라며 웃었다.

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