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軍 성추행 근절 다짐, 대국민 기만이었나

입력 2021-08-14 04:01
성추행 당한 사실을 신고한 여군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비극이 또 일어났다. 온 국민을 공분케 한 공군 이 모 중사 사건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얼마나 지났다고 유사한 일이 반복되는지 절로 울화가 치민다. 군내 성추행이 어쩌다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만연한 현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참에 여군과 남군을 완전 분리하자는 주장이 나올지 모르겠다. 사기가 충천해야 할 군의 현주소가 그저 참담하고 암울하다.

그제 부대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해군 중사(32)는 지난 5월 한 식당에서 같은 부대 B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부대에 알렸다고 한다. 그러나 A중사는 불이익을 우려해 신고를 미루다 이달 초 부대장 면담에서 재차 피해 사실을 알렸고, 이에 따라 지난 9일 사건이 정식 보고됐다. 이때서야 섬에서 근무하던 A중사는 육상부대로 파견됐다. 사건 발생 이후 육상부대로 파견될 때까지 두 달 가까이 피해자와 가해자 분리 조치가 확실히 이뤄졌는지 의문이다. 이로부터 사흘 뒤 A중사는 숨졌다.

A중사가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여러 면에서 이 중사 사건의 판박이다. 초기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부석종 참모총장을 비롯한 해군 지휘부에 대한 보고 또한 A중사 사망 후 이뤄졌다. 이 중사 사건과 마찬가지로 해당 부대 차원의 조직적 은폐 시도가 있었다는 정황도 나오고 있다. 이 중사 사건을 계기로 병영문화를 확 뜯어고치겠다던 군 당국의 다짐은 대국민 기만극이 됐다.

군 당국은 이번엔 또 어떤 말로 변명할 텐가. 서욱 국방부 장관은 “있어선 안 될 일이 발생한 데 대해 유족과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하고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 이 중사 사건 때와 똑같은 패턴이다. 지시 내용 또한 토씨 하나 다르지 않다. A중사 사건 전 서 장관은 세 차례 대국민 사과와 성추행 근절을 약속했다. 달라진 건 사과 횟수뿐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서 장관은 이에 대한 정치적·도덕적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수사를 맡은 군이 제대로 수사할지 미덥지 않다. 이 중사 사건 수사 진행과정을 반추하면 그렇다. 오죽하면 여당 내에서조차 “국방부 시스템을 더 이상 못 믿겠다”며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는 분노가 폭발할까. A중사의 억울함을 없애는 철저하고 엄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법적 책임은 물론 해군 수뇌부의 지휘책임도 확실하게 물어야 한다. 동시에 뼈를 깎는 군의 자정 작업도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