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 11일 발표한 ‘고교학점제 도입에 대한 학생, 학부모, 교사의 인식 조사’를 보면 고교학점제(이하 학점제)에 대한 최대 우려는 대입제도와의 엇박자였다. 선택형 교육과정인 학점제를 예고해 놓고 표준화 평가인 대학수학능력시험 비중을 크게 늘린 것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처럼 모순이란 지적이 평가원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교사 그룹에선 대입제도와의 불일치를 가장 걱정하고 있었다. 학점제 도입으로 우려되는 사항에 대해 교사 38.5%는 ‘학교교육 방식과 대입제도의 불일치’를 꼽았다. 두 번째로 많은 ‘선택 중심교육으로 인한 보편교육 위축’(17.5%)보다 배 이상 많았다. 학부모는 ‘진로 결정, 과목 선택에 대한 학생·학부모 부담’(28%)에 이어 대입제도와의 불일치(26.5%)를 많이 선택했다. 학생은 5명 중 1명꼴(19.7%)로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평가원에 접수된 의견을 살펴보면 “수능 정시 비중이 확대되는 현 상황과 학점제 취지가 부합하지 않는다” “고교 교육과정과 대입 불일치로 학교교육이 파행할 우려” “학점제의 새 변화로 대입과의 괴리감에 더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안쓰럽다” 등이 있었다.
수능 위주의 정시모집 비율은 문재인정부 들어 30% 이상으로 의무화된 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입시특혜 의혹 사태 이후 서울 주요 대학이 40% 이상으로 올렸다. 통상 수시모집에서 정시모집으로 이월되는 인원이 5% 정도임을 감안하면 실질 정시 비율은 45% 안팎으로 예상된다.
수능 비중이 늘면 학점제 도입은 힘들어진다. 고교 교육과정이 수능 과목 중심으로 편성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학점제가 도입되면 통상 1학년 때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공통과목을 듣고 2·3학년 때 선택형 교육과정으로 넘어간다. 3학년 2학기는 대입 준비에 몰입하는 시간이어서 결국 3개 학기가 실질적으로 학점제가 운영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 3개 학기가 수능 위주로 교육과정이 편성될 경우 학점제 도입 취지는 크게 퇴색한다. 정시 비중이 높아질수록 고교 수업을 포기하고 수능 준비에만 몰입하는 이른바 ‘정시파’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들을 나무랄 수도 없다. 직업계고가 아닌 이상 고교 진학자의 1차 목표는 대학 진학이다. 수시를 노리는 학생이라도 수능 최저학력 기준이 설정된 대학들이 있어 수능 준비를 해야 한다. ‘고교학점제용’ 대입제도는 차기 정부 집권 중반에 해당하는 2024년 상반기에 발표될 예정이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