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의당 반대하고 세계신문협회도 철회 요구한 ‘언론 악법’

입력 2021-08-13 04:03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12일 전체회의를 열어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심의하려다 야당의 반대로 회의를 연기했다. 회의는 미뤄졌지만 개정안을 8월 중 입법 완료하겠다는 더불어민주당 방침은 변함없다. 이 법은 언론 5단체가 ‘언론재갈법’으로 규정했을 정도로 곳곳에 독소 조항이 있다.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토록 한 게 대표적이다. 잘못된 보도는 지금도 민사상 손해배상과 형사처벌 대상인데 징벌적 배상까지 덧씌우면 보도·취재가 현저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기사가 사생활 핵심 영역을 침해하거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경우 언론사와 포털에 기사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는 조항도 비리 당사자 등에 의해 악용될 소지가 농후하다.

오죽했으면 여당과 입법 공조를 해온 정의당조차 연일 이 법을 반대하고 나섰겠는가.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는 상무위원회의에서 “여당 안이 입법되면 정치·경제권력이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악용할 소지가 다분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2019년에 언론 대상 소송의 42.4%를 고위공직자, 기업 등 힘 있는 사람들이 제기했다는 점을 들기도 했다. 정의당은 지난 11일 의원총회에서도 언론중재법 개정안 반대 당론을 정했었다. 해외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 세계 60여개국 1만5000여 언론사가 가입된 세계신문협회(WAN-IFRA)는 성명을 통해 “이 개정안은 비판 언론을 침묵시키고 한국 민주주의를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며 법안 철회를 요구했다.

여당은 민주주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이 법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일부 보수 언론이 마음에 안 든다고 그들의 입을 틀어막겠다는 의도로 보이지만 그로 인한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소송을 우려한 기자의 자기검열로 언론자유가 위축됨은 물론 권력자에 대한 감시 기능이 약화되고 비리 당사자들의 여론 호도와 보도 봉쇄에 악용될 게 뻔하다. 지금의 언론자유가 수십년 민주언론 투쟁을 통해 쟁취한 것임을 여당도 모르지 않을 테다. 그런 숭고한 가치를 서푼도 안 되는 명분으로 형해화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