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정권교체와 정권유지 여론 간 격차가 한때 20% 포인트를 넘었지만 한 자릿수로 좁혀졌다”며 “재보선 패배 이후 정권교체가 당연시되던 상황에서 벗어나 예측불가의 상황으로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여론조사 결과들이 들쭉날쭉해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승부를 예단하기 힘든 쪽으로 가고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사회가 극단적으로 양분돼 있는 상황에서 내년 대선이 양자 구도로 치러진다면 양 진영이 총결집할 테고, 승부는 박빙이 될 것이다.
예측불가 선거전을 지켜보는 유권자들에게 참고가 될 만한 흥미로운 자료가 하나 있다. 2019년 영국에서 방영된 TV 드라마 ‘브렉시트: 치열한 전쟁(Brexit: The Uncivil War)’이다.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에 찬성하냐 반대하냐를 물은 국민투표에서 탈퇴 쪽이 이긴 것은 다들 안다. 하지만 어떻게 이겼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드라마는 탈퇴 진영의 전략가 도미닉 커밍스가 어떻게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는지를 보여준다. 남의 나라 국민투표가 한국 대선과 무슨 접점이 있을까 싶지만,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현대 선거전의 특징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여서 우리의 선거 캠페인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선거 주제에 ‘EU 탈퇴 찬반’ 대신 ‘정권교체 찬반’을 넣어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커밍스는 우선 극우파를 배제하고 시작했다. 같은 탈퇴 진영이지만 목소리가 거칠고 과격한 극우파와 함께할 경우 부동층을 다 놓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외연을 넓히려면 보다 점잖은 이미지가 필요했기에 ‘우리는 저쪽과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실상은 같은 기치 아래 있으면서 민감한 이슈에 대해 악다구니 쓰는 지저분한 역할을 극우파에 떠넘긴 것에 가까웠다.
커밍스는 유권자 그룹 중 입장이 확고한 탈퇴파와 잔류파는 제쳐놓고, 나머지 3분의 1인 ‘이도 저도 아니지만 설득 가능한 사람들’을 공략하는 데 집중했다. 마음속으론 탈퇴를 바라지만 급격한 변화에 대한 걱정도 큰 사람들, 그냥 정치에 무관심해 속내를 알 수 없는 이들, 사회 주류로부터 지속적으로 밀려나 소외된 계층 등이 이 그룹에 속했다.
공략할 대상을 찾았다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단순명료한 메시지가 필요하다. 커밍스가 만든 핵심 구호는 ‘주도권을 되찾자(Take Back Control)’였다. 잘 나갔던 옛 시절의 권력, 그러나 유럽에 뺏겨 버린 권력을 EU 탈퇴를 통해 도로 가져오자는 의미다. 그리고 커밍스는 선거운동원들에게 ‘3억5000만 파운드(약 5612억원)와 터키’를 반복해서 외치라고 했다. 영국이 매주 EU에 내는 분담금 액수와 조만간 EU에 가입한 후 영국으로 몰려올 나라를 뜻하는데, 팩트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중의 분노와 공포감을 자극하려는 비열한 술수였다.
잔류 진영의 캠페인이 정통파였다면 커밍스 팀은 변칙적이었다. 선거운동의 오랜 관행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했다. 한 번도 투표해본 적 없으면서 기성 체제에 반감이 큰 유권자 300만명을 데이터 분석회사를 통해 찾아내 이들의 SNS에 맞춤형 정치광고 10억개를 퍼부었다. 물론 이 과정에 불법적 요소가 많았지만, 숨은 유권자를 발굴해 SNS로 공략한다는 발상 자체는 새로웠다.
잔류 쪽이 약간 우세하던 흐름은 어느새 뒤집어졌다. 거짓 주장과 선동, 반칙을 서슴지 않는 커밍스 팀의 변칙 공격이 먹힌 셈이다. 잔류 진영의 전략가 크레이그 올리버는 그동안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취급받아온 것에 울분을 토하는 여성을 보면서 이런 목소리를 놓쳐왔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소외된 대중 사이에서 오랜 기간 쌓인 분노가 얼마나 큰지를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커밍스가 구사한 술수를 따라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나라 대선에서도 온갖 책략이 동원될 텐데, 그것에 수동적으로 휘둘리기보다는 각 캠프가 쏟아내는 메시지의 의도와 진실성 등을 꿰뚫고 주체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아직은 당내 경선 단계여서 주자들은 집토끼(고정 지지층) 구미에 맞는 말만 하고 있다. 각 당 후보가 정해지면 중원으로 나와 정권교체냐 아니냐를 놓고 산토끼 잡기 전쟁을 벌일 것이다. 아직까지는 실망스러운 모습들만 보이는데, 본선에선 다들 좀 전력이 개선됐으면 한다. 지금처럼 지리멸렬해선 관전할 의욕이 사라질 판이다.
천지우 논설위원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