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에게 행했던 두 가지 가정교육이 나옵니다. 하나는 직업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교육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부모로부터 먹고사는 법,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법을 배웁니다. 가인은 농사를 지어 얻은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아벨은 가축을 키워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각각 하나님께 제사 드립니다. 이걸 누구에게 배웠겠습니까. 아담과 하와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아담과 하와의 자녀교육은 실패로 끝납니다. 장남 가인은 살인자로, 차남 아벨은 피살자로 끝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도대체 문제가 뭘까요.
아담과 하와 가정교육의 결정적 문제는 아담과 하와가 가정의 주인, 가정의 가장이 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가인을 낳을 때 하와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창 4:1) 어떻게 보면 은혜스러워 보입니다. 그런데 주어가 누구입니까. ‘내가’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시긴 했지만, 내가 낳았고 내가 득남했다는 겁니다. 직업교육, 신앙교육, 인성교육도 다 내가 시킨 겁니다. 하나님은 돕는 자고 내가 가정의 주체였던 겁니다. 그 결과가 무엇이었겠습니까. 가정불화였습니다. 형제간 살인이었습니다.
나중에 아담과 하와가 잘못을 깨닫고, 셋째 아들을 낳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4장 25절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4장 1절과 비교해 보십시오. 첫째 아들 가인의 이름은 ‘얻었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득남했고 내가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셋째 아들 셋의 이름은 ‘주셨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겁니다.
내가였던 가정의 주인이 하나님으로 바뀐 겁니다. 가인을 낳을 때는 “내가 득남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셋을 낳을 때는 “하나님이 주셨다”라고 고백합니다. 주어가 바뀌었습니다. 가정의 주인이 바뀐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셋을 ‘다른 씨’라고 표현한 겁니다. 4장 25절 하반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왜 다른 씨입니까. 가인과 가인의 후손은 아담과 하와로부터 내가 주인인 인생관을 보고 배워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셋과 그의 후손은 달랐습니다. 부모로부터 하나님이 주인이요, 가정의 가장인 인생관을 보고 배우며 살아가던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래서 셋은 가인과 다른 씨인 겁니다.
결국 어떻게 됐을까요. 셋의 후손으로 노아가 나오고, 노아의 홍수 때 가인의 후손들은 다 죽습니다. 오로지 셋의 후손인 노아 가족들만 살아남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자녀를 살리고, 가정을 살리는 중요한 원리가 있습니다. 가정이 화평하려면 우리의 자녀와 후손들이 셋의 후손들처럼 가정의 가장이 ‘나’에서 ‘하나님’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내가 얻었다’에서 ‘하나님이 주셨다’로 인생관과 가치관이 바뀌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도 자녀도 재산도 내가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요 가장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내 상식과 기준대로 자녀를 가르치지 마시고 하나님의 기준, 하나님의 방법대로 가르치십시오. 그렇게 할 때 여러분 가정에 평화가 임하고, 여러분 자녀와 후손들도 셋의 후손 노아의 가족들처럼 불심판에도 살아남게 되리라 믿습니다.
김윤태 대전 신성교회 목사
◇신성교회는 대전 유성구 신성동에 위치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소속 교회입니다. 애천애인(愛天愛人)의 목회철학과 마을 목회를 실천하는 선교적 교회를 세워나가고 있습니다.
●이 설교는 장애인을 위해 사회적 기업 ‘샤프에스이’ 소속 지적 장애인 4명이 필자의 원고를 쉽게 고쳐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