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에 영성이 더해지면 설교에 힘이 붙는다. 이덕주(69) 전 감리교신학대 교수의 글이 그렇다. 이 교수는 기독교문사 편찬실장과 편집주간을 역임하고, 감신대 역사신학 교수로 한국교회사와 아시아교회사를 평생 연구하다 2018년 정년을 맞이했다. 이 교수는 서울 신암교회와 광서교회 목회자로 섬긴 이력도 있으며 신학교수 시절에도 부흥회 강사로 자주 초청됐다. 대학과 교회 양쪽을 오간 그는 은퇴 후 연구실의 모든 사료와 책을 후학들에게 나누고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며 성경 필사와 걷기 묵상과 저술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이덕주의 산상팔복 이야기’(홍성사)는 이 교수 부흥회 설교의 소산이다. 부흥회와 사경회 8~10회 설교를 위해 간직한 노트를 기초로 최근의 묵상이 더해져 책으로 나왔다. 예수 그리스도가 산에 올라 무리 가운데 제자들만 이끌고 시작한 마태복음 5장 1~12절의 산상수훈 설교는 여덟 가지 복에 관해 말한다.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하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 하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들에게 복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한국교회 주요 목회자라면 팔복을 해설하는 책을 한 번쯤 내놨을 법한데, 이 교수의 글은 이 가운데 수작으로 꼽을만 하다.
이 교수는 신구약을 종횡하며 여덟 가지 덕목에 관해 해설한 뒤 평생 연구해온 한국교회사 주요 인물들의 팩트를 덧붙인다. 말씀이 한반도에서 역사가 되어 마을 교회를 섬긴 목사님과 고향 교회를 지킨 장로님 권사님의 이야기, 곧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얘기로 다가와 감동 감화의 전율을 선사한다.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홍성사 1층 책방에서 만난 이 교수는 “일제 강점기 한국교회가 받은 축복이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빌어 주셨던 산상팔복이었다”고 말했다. 3·1운동의 투쟁과 희생으로 시작된 당시의 교회사는 신사참배 거부와 순교로 마무리됐다. 수많은 성도가 옥에 갇히고 추방당하고 빼앗기고 목숨을 잃었다. 그때의 한국교회는 가난했고 애통하였으며 온유하고 목마른 자들이 긍휼과 청결한 마음으로 평화를 심기 위해 애쓰다 욕을 먹고 추방되고 박해를 받아 결국 죽임을 당했다. 이 목사는 “그런데도 당시엔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누릴 수 있는 하늘의 축복 여덟 가지를 누렸다”면서 “일제 강점기 예배가 ‘만복의 근원 하나님’ 찬송으로 시작해 ‘복의 근원 강림하사’를 거쳐 ‘이 천지간 만물들아 복 주시는 주 여호와’로 끝났던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유학을 갔다가 족자에서 읽은 ‘산상보훈’ 말씀에 끌려 세례를 받은 후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미국 교회에 선교사 파송을 요청함으로 ‘조선의 마케도니아인’이 된 이수정, 선교 실패와 부진의 원인이 바로 자신임을 깨닫고 교인들 앞에서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평양 대부흥의 시작이 된 애통의 선교사 로버트 하디, 하나님 얼굴을 뵙길 바라며 마음 씻기에 나서 탁사(濯斯)란 호를 쓴 한국인 최초 신학자 칭호의 최병헌, “고난은 우리 민족을 당신의 거룩한 뜻으로 이루기 위해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선언한 함석헌 등이 가난 애통 온유 주림 긍휼 청결 화평 박해의 주인공으로 각각 등장한다. 순교자 서기훈 신석구 주기철 목사의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교수는 “모든 것을 멈춰 세운 코로나19가 일제 강점기에 버금가는 축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식민 지배와 동족 간의 전쟁으로 점철된 한국교회 고난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다음세대에게 새로이 말씀에 대한 갈급함을 느끼게 하는 통로로 이를 활용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해 ‘벽돌책’ 두께의 ‘손정도-자유와 평화의 꿈’(밀알북스)을 펴낸 이 교수는 로버트 하디 선교사를 다룬 대작을 곧 신앙과지성사에서 출간할 예정이다. 팔복 이외에 또 다른 설교집 계획을 묻자 이 교수는 “일제 강점기 정경옥 전 감신대 교수가 말한 성경 속 삼봉(三峯)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창세기 1장의 창조론, 요한복음 3장 16절의 구원론, 요한계시록 22장의 종말론 교회론이 곧 세 개의 봉우리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