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인상·집값 급락 경고에도 ‘영끌·빚투’ 더 심해졌다

입력 2021-08-12 04:02

당국의 금리 인상·집값 급락 경고에도 ‘빚투’ 열풍은 더욱 뜨거워지면서 가계대출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증가했다.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은행권 가계대출만 10조원 가까이 늘었고, 제2금융권 대출도 가파른 증가세다.

한국은행은 ‘2021년 7월 중 금융시장 동향’을 통해 7월 국내 은행권 가계대출은 전달보다 9조7000억원 증가했다고 11일 밝혔다. 전달 증가 폭(6조3000억원)보다 3조4000억원이나 더 늘어났고, 지난해 동월(7조6000억원)에 비해서도 2조원 이상 증가했다. 지난달 가계대출 증가액 규모는 2004년 통계작성 이래 7월 기준으로 가장 높다고 한은은 전했다.

가계대출 증가 원인으로는 부동산 열풍이 꼽혔다. 한은은 주택 구매 수요가 늘어나며 주택매매, 전세거래 관련 자금 수요가 늘었고 집단대출 취급도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달 가계대출 증가량 중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6조1000억원으로, 전체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투자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공모주 청약 관련 자금 수요도 가계대출 증가를 부추겼다. 7월 중 기타대출은 3조6000억원 급증했는데, 청약증거금을 마련하기 위한 신용대출 등의 영향이 크다고 한은은 분석했다. 지난달 SD바이오센서, 카카오뱅크, HK이노엔 등 ‘대어’로 꼽히는 기업들이 일반청약을 진행했다.


가계대출 급증세는 은행권을 넘어 제2금융권에서도 관측되고 있다. 2019년 7월까지만 해도 월중 증가량이 감소 추세(-1000억원)에 있던 제2금융권 가계대출은 지난해 7월 1조8000억원 늘어난 데 이어 지난달에는 5조6000억원 폭증했다. 금융당국의 대출규제로 은행권 대출이 어려워지자 자금 수요자들이 제2금융권으로 몰리는 ‘풍선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같은 대규모 가계대출 증가에는 잇따른 정책 실패로 신뢰를 잃어버린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올해 1~2차례 금리인상을 예고하고 있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이례적으로 대국민 담화를 통해 ‘집값 급락’을 강력히 시사했지만 시장은 전혀 아랑곳않는 분위기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가계대출을 막아야 집값이 잡히는 게 아니라 집값이 먼저 잡혀야 가계대출이 줄어들 것”이라며 “정책의 순서와 방향, 효과 모든 측면에서 현 정부는 신뢰를 잃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대출 증가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금융 당국의 고심도 커지고 있다. 금융위는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연 5~6% 수준으로 관리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상반기 기준으로만 증가율이 8~9% 수준까지 뛴 데다 하반기 들어서도 잡힐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1일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개별 차주까지 확대 적용하는 등 가계부채 관리 대책을 세웠지만 부채 증가세를 막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전날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5대 금융지주(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회장들을 만나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와 금융회사에 잠재 리스크로 작용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관리해달라”고 요청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도 “가계부채 관리를 철저히 하고, 관련 대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효과를 높일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김지훈 조민아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