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는 7월 29일자 11면 톱기사로 모더나 백신이 8월 첫째 주부터 재공급돼 8월 접종에 무리가 없다는 정부 발표를 배치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과 모더나사 부회장 등이 긴급 영상회의를 해 8월 공급을 차질 없게 하도록 다짐받았다는 점을 김부겸 국무총리가 발표했다고 비중 있게 보도했다. 하지만 열흘 만에 이 기사는 허위보도가 됐다.
7월 13일자 6면에는 거리두기 4단계를 짧고 굵게 끝내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전하며 4단계 국면을 조기에 종식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열흘 후인 23일 수도권 4단계는 2주 연장됐고, 8월 6일에 또 2주 연장됐다. ‘짧고 굵게’가 한 달 보름 이상을 지칭하는 표현이 아니라면 이 기사도 허위인 셈이다.
7월 2일자 1면에는 50대가 모더나 백신을 맞게 됐다고 보도했다. 한 달이 지나고 보니 50대는 모더나만 맞는 게 아닌 것으로 정리됐고, 접종 간격도 늘어났다. 신문 1면에다 버젓이 허위보도를 한 꼴이 됐다. 7월 1일자 3면에는 백신 접종자에 대한 사적 모임 인원 제한이 없어지는 등 인센티브가 시행된다고 보도했지만 현재 백신 접종자 인센티브는 유명무실화됐다.
코로나19 백신 관련 분야에 한정해도 7월 한 달간 본보 지면에서 허위보도로 피소될 위험이 있는 기사는 4건이나 된다. 비슷한 보도가 반복됐으니 국회에서 논의 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개정안은 신문·방송사, 인터넷신문사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에 따라 허위·조작보도를 했을 때 손해액의 5배 이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해야 하며, 정정보도를 했을 때 원보도와 같은 분량·크기로 게재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접종계획 보도를 믿고 접종 일정 후 모임을 잡았다가 달라진 접종계획 탓에 중요한 모임에 나가지 못하게 돼 큰 손해를 입었다는 피해자가 있을 수 있다. 짧고 굵게 4단계가 끝날 것이라는 보도를 믿고 목돈을 들여 인테리어를 새로 한 자영업자가 있다면 피해가 엄청날 것이다. 이런 분들이 허위보도가 고의가 아니었다 해도 곧 거짓으로 드러날 정부의 발표를 확인하지 못한 채 반복해서 보도한 점이 중대한 과실이라고 지적한다면 무어라고 반박해야 할지 막막하다.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얼마나 많은 정정보도를 실어야 할까. 백신 문제 외에도 ‘아파트값 잡는다’ 등 정부와 정치권의 약속이 허위로 밝혀진 보도는 부지기수다. 따지고 보면 한다 했다가 안 한 것, 안 한다 했다 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어쩌면 매일 신문 2~3개면 분량, 방송 뉴스의 5분은 정정보도 코너가 될지도 모른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또 어떤가. 정부나 정치인들의 발표·주장이 거짓임을 가늠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허위보도를 해서 발생한 피해를 다 책임져야 할 텐데 억울한 측면이 많다. 검증이 무릇 언론의 일이라지만 어디 한두 번이어야 피할 수나 있지. 허위보도의 원인을 제공한 이들에게 10배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법도 하나 따로 만들어야 형평성이 맞지 않을까.
그런데 사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언론이 어떻게 보도해도 손해배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점이다. 위의 4가지 보도 당시 정부 발표의 허위성을 알아채고 발표가 거짓이라고 보도했다면 징벌적 손해배상 요구를 면할 수 있을까. 개정안에 몇 년 후에도 책임을 묻는 내용까지 포함되면 한참 지나고 보니 정부의 허위 발표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며 오히려 당시 정부 발표를 거짓말로 몰아세운 보도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배상하라는 세력도 분명히 나올 것이다. 참으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아닐 수 없다.
정승훈 사회부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