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구 바꾼다, 설명도 없이… 접종 신뢰 저하 자초한 정부

입력 2021-08-11 00:05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 165일이 지나는 동안 정부는 접종 연령·간격을 비롯한 접종 계획을 수차례 변경해 왔다. 당초 염두에 두지 않았던 교차접종도 시행했다. 백신 수급 상황 등에 따라 계획이 바뀌는 건 불가피하지만 문제는 너무 자주 바뀌고, 충분한 배경 설명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접종 원칙을 뒤집어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는 일이 되풀이될 경우 불신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최근 모더나 백신 수급 차질이 되풀이되면서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의 접종 연령 변경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AZ 백신 의약품 허가는 만 18세 이상이어서 전체 성인이 맞아도 문제는 없지만 희귀 혈소판감소성 혈전증(TTS) 때문에 7월부터 만 50세 이상에게만 접종하고 있다. 김기남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접종기획반장은 10일 브리핑에서 “코로나19의 유행 상황, 백신 수급 상황에 따라서 접종 가능 연령에 대한 논의는 변동 가능하다”며 “향후 상황에 따라서 전문가 자문을 거쳐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날 정은경 추진단장도 비슷한 입장을 전했다.

하지만 AZ 백신 접종 연령을 확대할 경우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AZ 백신은 TTS 발생 위험으로 인해 앞서 두 차례나 접종 연령을 변경했다. 먼저 지난 4월 12일 만 30세 미만에 접종을 제한했다. 연령대별로 접종 후 위험 대비 이득을 분석했을 때 30대 이상이 접종으로 인한 이익이 더 크다는 분석 결과를 근거로 들었다. 이 결정은 지난달 50대 이상 접종으로 달라졌다. 별다른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다만 지난 6월 16일 30대 남성이 TTS로 사망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이 나왔다. 안전성을 이유로 백신 연령을 거듭 변경한 상황에서 수급을 이유로 다시 연령을 변경했을 때 신뢰성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교차접종도 허용했다. AZ 백신 접종 연령이 바뀌면서 40대 이하 AZ 1차 접종자는 2차 접종으로 화이자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대다수 전문가는 교차접종이 예방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봤지만 원칙적으로 접종 방법을 바꾸려면 임상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았다.


화이자 백신의 접종 간격은 한 달도 안 돼 두 번 달라졌다. 지난달 23일 정부는 화이자 백신의 접종 간격을 3주에서 4주로 변경했다. 그리고 17일 만에 또 6주로 늘렸다. 모더나 백신도 4주에서 6주로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접종 간격 변경이 안전성, 효과성에 미칠 영향에 대해 구체적인 의학적 설명을 하지 않았다. 대국민 안내도 불충분했다. 이미 1차 접종을 마친 50대는 2차 접종일이 2주나 밀렸지만 이를 따로 고지받지 못했고, 일부는 접종 간격이 8주로 표시되기도 했다.

접종 연령·간격 등 원칙이 바뀌는 주된 이유는 백신 수급의 불안정이다. 백신 확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에 1년 내내 아슬아슬한 상황이 반복되는 위험을 안고 가게 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접종에 대한 국민 신뢰를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천병철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는 “백신 접종에선 안전이 가장 우선시돼야 한다”며 “백신 수급이 원활하지 못하면 기존의 접종원칙을 바꿀 게 아니라 목표 접종률 달성을 조금 늦추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