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 일단 주자’ 곳간 텅텅 지자체들, 묻지마 지원금

입력 2021-08-11 00:04

코로나19를 맞아 각 지방자치단체의 ‘묻지마식’ 재난지원금이 난무하고 있다. 지자체들이 재정 여력을 고려하지도 않고 곳간을 활짝 열면서 지난해부터 올해 5월까지 뿌린 재난지원금이 10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선심성·형평성 논란이 따라붙는데도 이를 막을 제도적 방법은 없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질 것이란 우려가 높다.

10일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광역·기초 지자체 차원에서 지급된 자체 재난지원금은 총 7조819억원에 달했다. 광역 자치단체별로 17개 시·도 중 경기도(1조3478억3700만원)와 서울(1조2462만3700만원)의 지급 액수가 가장 컸고, 세종(12억1300만원)이 최소였다. 올 들어서는 5월 말 현재 총 2조684억1900만원의 재난지원금이 보편지원 방식으로 지급됐다. 이런 현상은 현재진행형이다. 정부가 국민 88%에게 5차 재난지원금(8~9월 예상)을 주기로 방침을 정했지만 경기도 외에 전남 광양시와 영암군이 전체 지역민을 대상으로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문제는 재정 여력이 부족한 지자체도 재난지원금을 아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재난지원금 규모가 컸던 상위 17개 기초자치단체를 보면 재정자주도가 하위권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재정자주도는 전체 세입에서 용처를 정하고 집행할 수 있는 재원의 비율로 재정력을 일컫는다. 기초자치단체 중 재정자주도 순위가 127위인 경기도 수원시는 지난해 자체 재난지원금으로 네 번째로 많은 1201억6000만원을 뿌렸다.

그 결과 올해 지자체의 통합재정자립도는 2010년 이래 처음으로 평균 50%를 밑도는 수준(47.4%)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예산정책처는 “자치단체들이 기금 활용, 지방채 발행 등을 통해 자체 재난지원금을 지급해 재정 여력이 낮은 지자체의 여건이 악화된 경우도 상당하다”고 우려했다.

형평성 문제도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최근 전남 순천시는 여행업계를 지원하기로 했고, 부산은 재난지원금을 학생 지원에 집중하는 등 지원 대상·금액에 일관성이 없는 상황이다. 자체 재난지원금이 없는 지자체에서는 “왜 옆 동네는 주는데 우리는 안 주느냐”며 볼멘소리가 흘러나온다.

지자체의 무분별한 재난지원금 지급을 통제할 방법은 사실상 없다. 보건복지부 산하 사회보장위원회가 지자체의 복지정책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현 정부에서 유명무실해진 상태다. 게다가 일회성 복지사업은 이들이 다루는 대상도 아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지자체 차원의 재난지원금 지급에 대해 중앙정부가 어찌할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행정안전부가 지방재정 건전성을 견인하는 최소한의 역할도 하고 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배인명 서울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주민들에게 현재 재정 상황과 구상 중인 재난지원금 지급 계획을 투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