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metaverse·3차원 가상세계) 테마’가 이토록 길게 이어지는 건 국내 증시가 유일하다.”
“메타버스 사업 성과가 없는 업체를 투자자들이 나서서 띄우는 경향이 있다.”
9일 여의도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국내 주식시장에서 부는 ‘메타버스 열풍’에 대해 이렇게 진단했다. 메타버스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미래 수익원으로 떠오르면서, 테마주에 거품이 끼고 있다는 우려다. 메타버스 산업은 초기 단계인 만큼 실적은 미미해 메타버스 개념의 정확한 이해와 ‘옥석 가리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날 기준 메타버스 테마주로 언급되는 코스닥 상장 업체 10곳의 시가총액은 총 3조9200억원 가량이다. 해당 업체들의 시총 합계는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2조2000억원에 그쳤다(대상 기업 중 맥스트는 7월 27일 상장일 기준). 시총이 3개월 만에 1조7200억원 뛴 것이다.
메타버스 열풍은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문화 확산과 글로벌 메타버스 대장주 로블록스의 뉴욕 증시 상장(지난 3월), 네이버 플랫폼 ‘제페토’의 흥행 등으로 촉발됐다. 최근에는 애플과 페이스북, 삼성전자 등 대표 IT 기업들의 메타버스 관련 프로젝트라는 호재까지 맞았다.
국내에서도 온갖 산업이 메타버스 사업 계획을 밝히면서 메타버스 구현에 필요한 기술을 보유한 업체들이 줄줄이 테마주로 부각되고 있다. 하반기 공모주 중 이례적으로 ‘따상상상(시초가가 공모가 2배 형성 뒤 사흘 연속 상한가)’에 성공한 증강현실(AR) 플랫폼 기업 맥스트가 단적인 예다. 9일 기준 맥스트 주가는 공모가 대비 430% 가량 올랐다.
그러나 화려한 주가 뒤에는 초라한 실적이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분기 연결 기준 메타버스 관련주로 꼽힌 기업 10곳 중 8곳이 적자다(맥스트는 지난해 기준). 국내 메타버스 대장주로 불리는 자이언트스텝은 지난해 15억원, 올 1분기 5억원 가량의 영업손실을 봤다. 시총 6300억원에 달하는 위지윅스튜디오는 영업손실이 9억원 정도다.
메타버스 산업이 초기 단계인 만큼 눈에 띄는 실적을 기대하기는 이른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메타버스 산업 투자에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메타버스가 ‘메가 트렌드’로 부상할 것이라는 전망에는 이견이 적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일부 업체의 주가는 지나치게 고평가됐다는 우려가 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메타버스 종목 가운데 5년 치, 10년 치 실적을 선반영한 느낌까지 드는 것도 있다. 일부는 주가수익비율(PBR)이 80배에 달하는 데, 글로벌 메타버스 관련주 기준으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메타버스 구현 기술(인공지능, 가상·증강 현실, 인공지능 등)과 플랫폼을 갖췄다고 해서 무조건 테마주로 분류하는 것도 위험하다. 최근 메타버스 수혜주였던 AI 영상인식 업체 알체라는 스스로 메타버스와 연관된 사업 모델이 없다고 밝히면서 주가가 하루 만에 25% 급락했다.
메타버스 개념도 더욱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증권가에선 메타버스의 필요 조건으로 3D 인터렉티브 콘텐츠와 플랫폼을 구현할 수 있는지, 이용자들이 실시간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지, 현실 세계와 연동되는 가상 경제 생태계가 구축됐는지 등을 꼽고 있다. 이 같은 조건을 충족하는 메타버스는 로블록스, 제페토 정도로 보고 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