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춘천에서 초등학생 남매를 키우고 있는 최현수(가명·76) 할아버지에게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덥다. 두 달째 내리쬐는 강한 햇볕에 조립식 판잣집은 찜통 같은데 집에는 오래된 선풍기 2대뿐이다. 밤새 선풍기를 틀어놓으면 어린 남매가 배탈이라도 날까 얇은 이불을 덮어주고 싶지만 집에는 겨울 이불밖에 없다. 최씨는 “이불이 오래되고 두꺼워서 아이들과 여름을 보내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최근 몇 년간 이상기후로 인한 불볕더위가 이어지면서 최씨와 같은 에너지 빈곤층(소득의 10% 이상을 에너지 구입 비용으로 지출하는 저소득 가구)의 고통은 점차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는 코로나19로 집 안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 에너지 소비량이 증가했다. 무더위에 이들을 반겨주던 교회 친교실이나 관공서, 경로당도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집 안에서 보내는 여름이 힘에 부친다.
지난해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서울시 저소득가구 에너지 소비 실태와 에너지 빈곤 현황’에 따르면 저소득 3가구 중 1가구 이상이 여름철 냉방에너지 부족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는 겨울철 난방에너지 부족 경험과 유사한 비율이다. 서울연구원은 “장기적으로 여름철 냉방수요는 더욱 증가할 전망인데, 이렇게 되면 여름철 에너지 빈곤율은 현재보다 크게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다행히 여름철 에너지 빈곤층을 위한 교계 구호단체의 지원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오요셉 월드비전 춘천종합사회복지관 간사는 “무더위를 찬물 샤워로 견디는 가정, 사시사철 겨울 이불로 지내는 가정이 아직도 많다”면서 “예년에는 이들을 위해 선풍기나 쿨매트 등을 지원했는데 올해 이분들을 만나보니 여름 이불 수요가 가장 많아 50가구에 지원했다”고 전했다. 월드비전은 폭염대비 지원사업을 시작한 2019년 이후 최대인 7억800만원을 전국 에너지 빈곤층에 지원했다고 지난 4일 밝혔다.
서울 연탄은행도 지난달 해피빈 모금을 진행해 74가구에 냉방용품과 삼계탕 등을 전달했다. 오유정 서울 연탄은행 간사는 9일 “겨울에 연탄을 땔 돈이 없는 어르신들은 여름에도 고물상에서 받아온 선풍기로 더위를 나기도 하고, 그나마 선풍기가 없는 경우도 적지 않다”면서 “어르신들이 거주하는 집은 에너지 효율이 떨어져서 방문해보면 체감온도가 40도는 되는 기분이다. 집이 이렇다 보니 실내보다 바깥 그늘이 시원하다고 나와 계신 분도 많다”고 전했다.
현실이 이렇지만 상대적으로 여름에는 에너지 빈곤층에 대한 후원이 줄어들어 구호단체들은 한국교회의 관심을 요청하고 있다. 허기복 밥상공동체·연탄은행 대표는 “에너지 빈곤층은 주거 환경이 열악하고 월소득이 낮으며 연세가 높으신 분이 많아 여름이든 겨울이든 꾸준한 보살핌이 필요하다”면서 “시원한 물 한 병이라도 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박용미 기자 m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