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양천구에 있는 세신교회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 사이에 자리 잡은 7층짜리 교회다. 얼핏 보면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외관이 특이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교회 남쪽 벽면에 빽빽하게 설치된 검은색 태양광 패널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태양광 패널은 옥상에 설치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교회는 외벽에 패널을 붙여놓았다. 세신교회는 어쩌다가 이런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일까.
궁금증은 지난 5일 세신교회를 찾아가 이 교회 김종구(58) 담임목사를 만난 자리에서 풀렸다. 김 목사는 “크리스천에게 환경 이슈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며 “단순히 관심을 가지는 수준을 뛰어넘어 신앙생활의 많은 부분을 환경 문제 개선에 바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세신교회가 작은 발전소로 거듭난 과정을 자세하게 들려주었다.
김 목사에 따르면 과거 세신교회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남쪽 외벽은 고강도 플라스틱의 일종인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의 창으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2019년 여름, 태풍으로 이들 창이 떨어져 나가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김 목사는 외벽 수리 공사를 어떻게 진행할지 고민하다가 우연히 서울시 홈페이지에 게시된 공고를 봤다. ‘태양광 벽체 시범사업’에 동참할 건물주나 기관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곧바로 신청서를 냈고, 세신교회는 시범사업에 동참할 3곳 중 하나로 선정됐다. 총공사비 7억원 가운데 5억원은 서울시가 냈고 세신교회는 나머지 2억원을 부담했다.
공사는 지난해 6월이 돼서야 시작됐다. 태양광 패널 외벽은 5개월 뒤 완성됐다. 세신교회 주보엔 이때부터 ‘세신 녹색교회 태양광 발전 현황’이라는 코너가 실렸다. 여기엔 태양광 패널로 인해 생산된 전력량과 이산화탄소 저감량, 식수(植樹) 효과 등이 소개된다.
김 목사는 “한 달에 태양광으로 인해 생산되는 전력량이 매달 3㎿ 정도 된다”며 “4인 가족이 월평균 사용하는 전력량이 300㎾ 정도이니, 4인 가족 10가구가 사용하는 전력이 생산되고 있는 셈”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교회 규모를 생각하면 미미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전기가 계속 생산되니 교인들도 신기해하는 거 같다”며 “앞으로 다른 벽면에도 패널을 설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신교회의 이색 볼거리로는 옥상도 빼놓을 수 없다. 교회는 2019년 ‘옥상텃밭위원회’를 만들어 옥상에 자동급수가 가능한 화분 136개를 설치한 뒤 34가구에 분양했다. 현재 옥상에는 상추 깻잎 토마토 가지 고추 파프리카 오이 호박 등 다양한 작물이 재배되고 있다. 처음에는 교인들만 텃밭을 가꿨지만, 현재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지역 주민들도 참여하고 있다. 교회 관계자는 “옥상 텃밭에 참여하는 34가구 가운데 3분의 1은 세신교회 성도가 아니다”며 “교회 인근에 사는 아파트 주민들이 텃밭 가꾸기에 동참하고 있다”고 전했다.
어찌 보면 태양광 패널은 교회 외관을 해칠 수 있어 설치가 망설여질 수도 있다. 옥상 텃밭도 마찬가지다. 교회로선 번거로운 일처럼 여겨질 법하다.
그럼에도 세신교회는 이들 사업을 밀어붙였다.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옥상에 텃밭을 운영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김 목사는 “교회가 지역 사회에서 환경 문제 해결의 작은 플랫폼처럼 작동하길 바라는 소망이 있었다”고 말했다.
“신앙인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는 거잖아요. 과거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제에만 집중하면 하나님 나라를 만들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창세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모두 고민해야 하나님 나라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들 3가지 차원의 문제가 모두 해결됐던 게 에덴동산의 질서였다면, 현재 이 세상은 에덴동산에서 멀어져 거의 멸망 직전의 상황에 당도한 듯합니다.”
김 목사는 세신교회가 녹색교회로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그는 교회에 이른바 ‘창조질서회복위원회’를 만들어 성도들과 함께 환경 문제를 고민할 계획이다. 노상 전도에 나설 때도 물티슈보다는 손수건을 나눠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김 목사는 “성도들이 하는 뜨개방에서 천연 수세미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보급하고, 농촌교회와 협력해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작물을 교회 성도들이 구매하는 식의 프로젝트도 벌일 생각”이라고 전했다.
“지금까지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에만 집중해 왔어요. 하지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의 생명이 모두 멸종한다면 구원은 아무런 의미를 지닐 수가 없을 겁니다. 환경 문제는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같은 이슈입니다. 타락한 물질 중심의 세계관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삶의 패턴을 만들어야 합니다. 교회 울타리 바깥에 있는 지역 주민들과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할 때 새로운 선교의 문도 열릴 거라고 확신합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