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천직을 보장하라!

입력 2021-08-10 04:02

자본주의 발달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역할에 관해서는 아직 해결되지 못한 논쟁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종교개혁이 자본주의 형성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대체로 의견이 일치한다.

자본주의 형성과 종교개혁 관계를 처음으로 설파한 사람은 아마도 막스 베버일 것이다. 그는 저서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The Protestant Ethic and the Spirit of Capitalism)’에서 종교개혁이 일상의 노동에 대한 인식을 바꿨으며 그것이 자본주의의 형성에 크게 기여했음을 설파하고 있다.

베버에 따르면 신이 부여한 일상의 직업을 처음 천직(天職)이라고 일컬은 사람은 루터였다. 그는 수도원의 금욕생활을 통해 세속의 도덕을 초월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가 부여한 천직에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성과를 내는 것이 곧 절대자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세속의 노동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한 것은 종교개혁이 이룬 가장 큰 성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루터가 말한 천직은 절대자로부터 주어지는 것이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맞는 천직을 발견하는 의무까지를 노동자에게 요구한 것은 장 칼뱅이었다. 그의 신학이론은 청교도운동의 출발점이 된 것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세속의 경제활동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꾼 것으로도 유명하다.

칼뱅에 따르면 인간의 구원은 일상의 선행이나 교회, 성직자의 설교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구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절대자의 선택에 따라 이미 결정돼 있다. 예정설이다. 그리고 절대자로부터 선택받음의 증거는 일상에서 성취와 성공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선택된 사람은 자기에게 맞는 천직을 찾아 성공함으로써 끊임없이 그것을 증명해 보여야만 한다. 이때 성공과 부의 축적은 자신의 영달이나 사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절대자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부를 많이 축적했다 하더라도 검소의 미덕을 져버려서는 안 되고 천직에의 봉사를 멈춰서도 안 된다.

칼뱅에게 부의 축적은 그 자체로 전혀 부도덕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절대자의 선택을 증명해 보이는 증거였다. 따라서 그에 간섭하는 규제와 억압은 배제돼야 마땅했다. 서구식 경제적 자유주의가 잉태되기 시작하고 끊임없는 자본축적과 재생산으로 대변되는 현대 자본주의의 맹아가 이미 16세기에 싹튼 것이다. 물론 부의 축적이 순전히 도덕적인 인식 아래 이뤄져야만 한다는 원리가 현대적인 윤리에 반드시 어울린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직을 찾아 성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전혀 16세기의 주장답지가 않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젊은이들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 가장 큰 원인은 일자리인 것으로 보인다. 천직을 찾기가 어려운 세상이 돼버린 것이다. 일자리를 만들기는커녕 온갖 부조리를 정부가 나서서 설치하고 모두가 갈기갈기 갈라서서 이념 투쟁하기에 바쁘다. 더군다나 엄마 찬스, 아빠 찬스다 해서 공정하지도 않다. 이 땅의 젊은이들을 위해 목청 높여 외치고 싶다. 천직을 보장하라! 물론 무리한 주장임을 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희망이라도 줄 수는 없을까. 능력과 적성에 맞지 않는 직책을 천직이라는 이름으로 떠맡을 수는 없다.

정치의 계절이다. 다음 대통령을 뽑아야만 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 사기에 가까운 온갖 정치적 수사를 멈추고 진지하게 다음 세대를 생각할 때다. 다시 한번, 천직을 보장하라!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