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등도, 노메달도 괜찮아!… ‘투혼’에 박수친 한국

입력 2021-08-09 04:02
2020 도쿄올림픽이 8일 폐막식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코로나19 팬데믹과 폭염 속에서도 대한민국을 대표해 도쿄로 건너간 선수단은 매 경기 열정적인 승부로 감동을 전했다. 선수들은 패배의 순간에 좌절하기보다는 상대의 등을 두드려주고 치켜세우며 올림픽 정신에 충실했다. 국민도 메달을 떠나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도쿄=김지훈 기자, 연합뉴스

에이스 김연경이 내리친 공이 일본 도쿄 아리아케 아레나 배구 코트의 선 바깥으로 튀어 나갔다. 김연경의 마지막 올림픽이자 45년 만의 메달 도전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선수들은 울지 않았다. 둥글게 둘러선 채 미소와 함께 ‘수고했다’ ‘잘했어’ 격려를 쏟아냈다. 시상대 밖에 선 그들에게서 실망이나 슬픔은 찾기 어려웠다. 김연경은 경기 뒤 기자단 앞에서 “기쁘다. 경기에 후회가 없다”며 감격의 눈물을 보였다.

2020 도쿄올림픽이 8일 폐막식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31개 종목 237명 한국 선수단도 이날 여자배구 동메달 결정전과 마라톤을 마지막으로 일정을 마쳤다. 코로나19 팬데믹 가운데 열린 올림픽이었지만, 선수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만의 드라마를 써 내려갔다. 메달을 따지 못해도 죄송하다며 고개 숙여 사죄하기보다 스스로와 상대를 격려했다. 최선을 다한 선수에겐 결과와 상관없이 응원이 쏟아졌다.

태권도는 처음으로 금 수확에 실패했지만, 이다빈은 태권도 67㎏ 초과급 결승에서 자신을 이기고 금메달을 가져간 상대에게 밝게 웃으며 엄지 척을 날려 찬사를 받았다. 유도 조구함은 100㎏급 결승에서 9분35초간 사투 끝에 패한 뒤 승자인 일본인 선수의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축하해줬다.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를 축하해주는 올림픽정신이 빛난 순간이었다.

선수들은 모든 것을 쏟아부으면서도 경기를 즐겼다. 수영 기대주 황선우는 자유형 200m와 100m에서 각각 7위와 5위에 오르며 ‘포스트 박태환’으로 이름 석자를 각인시켰다. 100m 준결선에서는 47초56으로 아시아신기록을 달성했다. 200m 결선에선 목표에 못 미쳤는데도 “아쉽지만 괜찮아요”라며 당당하고 ‘쿨한’ 반응을 보였다.

사격 25m 권총에서 금메달을 아깝게 놓치고 은메달을 목에 건 김민정은 “저는 아직 어리니까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고 생각해요”라며 활짝 웃는 얼굴로 시상대에 섰다. 탁구에선 17세 ‘신동’ 신유빈이 단식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단체에서도 8강에 머물렀지만 “재미있었다. 좋은 경험 했다”며 MZ세대(1980년대~2000년대 초 출생)다운 감상을 남겼다.

국민들도 메달에 연연하지 않았다. 3m 스프링보드 결선에서 아깝게 메달을 놓쳤지만, 한국 다이빙 역대 최고 성적인 4위에 오른 다이빙 우하람에겐 “금메달 못지않은 4위”라며 찬사를 보냈다. 육상 높이뛰기 우상혁도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금메달리스트 같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대선배 이진택이 1997년 세운 한국신기록 2m34㎝를 1㎝ 더 높게 뛰어넘으며 마라톤을 제외한 한국 육상 역대 올림픽 최고 순위인 4위에 오른 것의 의미를 높게 평가했다.

결선에서 기대보다 부진했지만 예선에서 전체 2위까지 오르는 등 다음 대회를 기대하게 한 스포츠클라이밍의 서채현, 4차례 올림픽 본선 도전 끝에 처음으로 결선에 진출한 요트의 하지민, 근대 5종에서 자신의 세 번째 올림픽 도전을 4위로 마친 주장 정진화에게도 무관심과 비난이 아닌 격려와 응원이 쏟아졌다.

명승부를 펼친 선수의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등 SNS 계정에는 ‘울면서 지켜봤다’ ‘수고했다’ 등 수천에서 수만에 이르는 응원 댓글이 달렸다. 일과시간이나 퇴근 시간대를 막론하고 각 포털 중계에는 한 번에 수십만, 때로는 100만이 넘는 시청자가 몰렸다.

서울의 회사원 정모(34)씨는 “대회 기간 동안 관심 가는 경기가 있을 때마다 사무실 책상 한편에 휴대전화로 중계를 켜놓고 몰래 지켜봤다. 말은 안 해도 비슷한 사람들이 많았다”며 “어린 선수들이 이기든 지든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귀엽고 보기 좋았다. 대회 자체가 성공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선수들의 노력은 인정해주고 싶다”고 했다.

조효석 권중혁 기자, 도쿄=이동환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