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올림픽 지형이 달라졌다. 근대5종 높이뛰기 다이빙 등 생소한 비인기 종목에서 메달을 거머쥐거나 우수한 성적을 내면서 세계의 벽을 허물고 있다. 반면 전통적 ‘메달밭’이었던 레슬링 태권도 유도 등에선 기업의 지원 중단, 선수 수급난, 코로나19 여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쇠퇴하는 모습을 보였다.
8일 폐막한 2020 도쿄올림픽에선 비인기 종목의 성과가 두드러졌다. 남자 근대5종에서 전웅태(26)가 3위를 기록하며 사상 첫 메달을 획득했고 정진화(32)는 4위를 기록했다. 남자 높이뛰기 우상혁(25)은 1997년 이진택이 세운 한국기록을 24년 만에 깨고 세계 4위에, 남자 다이빙 우하람(23)은 3m 스프링보드 결선에서 4위, ‘늦깎이 사수’ 한대윤(33)이 25m 속사권총에서 4위를 차지하며 각 종목에서 한국 올림픽 최고 성적을 냈다. ‘제2의 장미란’ 이선미(21)가 여자 역도에서, 류성현(19)이 남자 기계체조 마루 결선에서 4위에 올랐다. 요트 하지민(32)은 처음 결선에 진출했다.
불모지로 불리며 외면받던 비인기 종목에서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이들의 성취는 ‘깜짝’ 활약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선수들이 오랜 시간 묵묵히 실력을 갈고닦았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으로 본다. 대한육상연맹 이진택(49) 경기력향상위원장은 “좋은 선수가 나타나려면 기다려야 한다. 결코 바로 태어나지 않는다”며 “우상혁은 외로운 시기에도 강하게 훈련하고 부상을 이겨내며 10년 넘는 세월을 견뎠기에 지금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근대5종 전웅태와 정진화도 묵묵히 세계적인 실력을 쌓아왔다. 정진화는 2017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개인전 우승을 차지했고 전웅태도 2018년 월드컵에서 한 차례 우승하며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손환 중앙대 체육교육학과 교수는 “비인기 종목의 선수와 협회는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하면서도 절치부심하며 노력했다. 그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한국의 스포츠 저변이 넓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손 교수는 “예전에 비해 넓어졌다고는 하지만 비인기 종목은 여전히 어렵게 운동한다”며 “개인적인 노력이 많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1976년 이후 참가한 모든 올림픽에서 1개 이상의 메달을 획득한 레슬링은 45년 만에 메달 없이 올림픽을 마쳤다. 삼성이 2012년부터 지원을 끊으면서 쇠퇴가 심화됐다. 도쿄올림픽에선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단 2명밖에 출전하지 못하는 악재도 겹쳤다. ‘노골드’ 태권도도 유럽 선수들과 달리 코로나19로 국제대회에 거의 참가하지 못해 실전 감각이 떨어졌다. 태권도 세계화로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어려움을 더했다. 유도 역시 2016 리우올림픽에 이어 2회 연속 ‘노골드’에 그쳤다. 선수 수급난에 훈련방식 문제 등이 겹친 게 부진의 이유로 꼽힌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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