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태 등 보며 뛰었다”… 동메달 후배 뒤 지켜준 ‘맘따남’

입력 2021-08-09 04:05
전웅태(앞)와 정진화가 7일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근대5종 남자 개인전 레이저 런에서 트랙을 질주하고 있다. 한때 2~3위로 질주하던 둘은 이집트의 아메드 엘겐디에게 추월을 당했고, 결국 전웅태만 3위로 결승선을 통과해 동메달을 차지했다. 정진화는 4위로 골인해 메달을 놓쳤지만 대표팀 후배인 전웅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았다. 연합뉴스

“진화형은 정말….” 동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에서 내려온 한국 근대5종 국가대표 전웅태(26)가 취재진으로부터 대표팀 주장 정진화(32)의 말을 전해 듣자 눈을 질끈 감았다.

전웅태보다 먼저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을 지나간 정진화는 “4등만 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출전했는데, 그 4등이 나였다. 그래도 다른 선수가 아닌 웅태의 등을 보고 뛰어 마음이 편했다”고 말했다. 이를 전해 들은 전웅태는 씩씩하게 쏟아내던 말을 잠시 잇지 못했다. 그 짧은 순간에 전웅태의 머릿속으로 어떤 장면이 지나갔을까.

전웅태는 지난 5년간 경북 문경 국군체육부대에서 대표팀 동료들과 합숙하며 수영 승마 펜싱 사격 육상을 매일 세 종목으로 나눠 훈련해 왔다. 아침에 시작한 훈련은 해가 진 뒤에도 이어졌다. 부대 내 수영장 공사로 외부 시설을 이용할 땐 대표팀 승합차로 산길을 20분이나 가로질러야 나오는 식당에서 올갱이국에 밥을 말아 계란말이를 얹어 먹었다. 그 모든 순간마다 큰소리 내지 않고 후배들을 다독인 대표팀 주장 정진화가 있었다.

전웅태는 다시 입을 열어 정진화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진화형은 정말 ‘맘따남’이거든요. 마음이 따뜻한 남자…. 후배들을 항상 끌어주고 챙겨주는 진화형을 보면서 정말 배울 게 많다고 생각했어요.”

정진화에게 도쿄올림픽은 세 번째 도전이었다. 2012 런던올림픽에 처음 출전해 한국 근대5종 사상 최고 성적인 11위에 도달했다. 이후 합류한 전웅태·이지훈(26)과 함께 ‘황금세대’를 완성한 대표팀의 대들보다.

근대5종은 올림픽을 상징하는 종목이다. 금메달은 대부분 유럽의 몫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한국 근대5종은 2010년대 중후반부터 돌연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2018년부터는 출전하는 대회마다 금메달을 쓸어 담았다. 그해 근대5종 월드컵 시리즈와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석권해 세계 랭킹 1위도 찍었다.

그 중심에 정진화가 있었다. 정진화의 선수 인생에서 남은 과제는 올림픽 메달뿐이었지만, 도쿄올림픽 근대5종 남자 개인전이 열린 7일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정진화는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다. 총점 1466점을 획득한 정진화의 순위는 4위였다. 앞서 출전한 두 번의 올림픽보다 좋은 성적을 냈지만, 이번에도 시상대에 오르지 못했다.

한국 근대5종의 올림픽 도전 57년사에서 첫 번째 메달을 획득한 주인공은 후배 전웅태였다. 전웅태는 마지막 종목인 레이저 런에서 정진화보다 20.11초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동메달을 확정했다.

눈앞에서 날아간 정진화의 꿈. 하지만 정진화가 먼저 생각한 건 팀이었다. 올림픽만 세 차례 출전한 대표팀 주장은 긍지와 협동심으로 마음을 무장해 왔다. 정진화는 결승선을 통과한 뒤 전웅태를 부둥켜안았다. ‘우리가 해냈다’는 성취감과 ‘나는 메달을 놓쳤다’는 아쉬움이 눈물을 타고 쏟아졌다. 정진화와 전웅태의 강렬한 포옹은 올림픽방송서비스(OBS) 카메라에 포착돼 도쿄스타디움 전광판으로 상영됐다.

정진화는 믹스트존에서 “올림픽 준비 과정이 힘들었는데 전웅태가 메달을 획득한 기쁨에 많이 울었다”며 “나는 그저 선배들이 닦아놓은 길을 달려온 것뿐이다. 후배들도 그 길을 따라올 것이다. 그렇게 한국 근대5종은 세계적 강자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