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여권 의원 74명이 5일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한·미 양국이 이미 훈련 준비에 들어갔고 민주당 지도부 역시 훈련 진행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의원 일부가 반대 입장을 천명한 것이다. 이들의 주장은 “남북 대화 재개를 위해 북한에 명분을 주자”는 것이다. 하지만 대화 재개를 위한 명분을 북측에 주기 위해 우리 안보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손상돼선 안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많다.
설훈 민주당 의원을 포함한 범여권 의원 74명은 이날 성명서를 내고 “남북 관계와 한반도 정세의 결정적 전환을 가져오기 위해 연합훈련 연기를 결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의원들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담화에 대해 “대화 재개를 바라고 있으며 대내외적 명분이 필요함을 피력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북한에 끌려다닌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북한이 남북 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를 위한 협상에 나올 것을 약속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대화 재개 명분을 북측에 준다는 목적으로 한·미동맹 정신에 따라 매년 이뤄져 왔던 연합훈련을 사실상 취소하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은 “불명확한 대화 재개를 위해 중요한 안보훈련을 중단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천식 전 통일부 차관은 “남북 관계 개선 노력도 해야 하지만 안보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며 “북한 요구에 우리 안보체제가 흔들린다는 것은 국가안보를 북한에 맡기자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정부·여당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사실상 미국에 대한 압박이자 북한에 우리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일각에선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환수를 위해 필수적인 연합훈련을 연기하자는 여당 의원들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한·미 군 당국은 2019년 연합훈련에서 총 3단계로 이뤄지는 미래연합사 역량평가 중 1단계 기본운용능력(IOC) 평가만을 마무리한 상태다. 2단계 완전운용능력(FOC)과 3단계 완전임무수행능력(FMC) 평가는 시작도 못했다.
이번 연합훈련까지 연기되면 가뜩이나 축소 진행 중인 FOC 예행연습마저 불가능해진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여권의 요구는 이미 물건너간 전작권 전환 대신 북한의 손이라도 잡아보자는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훈련을 연기한다고 해서 북한이 순순히 대화에 나설지도 미지수다. 김 전 차관은 “연합훈련 여부는 남북 관계에 본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북한은 요구사항이 있을 때 대화에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당 지도부 역시 훈련을 원칙대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분명히 했다. 송영길 대표는 이날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처럼 구체적인 상황이 마련됐다면 고려할 게 많겠지만 남북 통신선만 연결된 상태에서 연합훈련을 연기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거듭 말했다.
오주환 김성훈 손재호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