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김연경이 이끄는 여자 배구 국가대표팀이 올림픽 무대에서 연일 강호들을 물리치고 승승장구하면서 한국 사회에 신드롬에 가까운 현상이 일고 있다. 김연경이 내뿜는 독특한 자아와 리더십은 우리가 여성 스포츠 영웅에게서 흔히 떠올리는 차분하고 성실한 이미지와 다르다. 배구 팬이 아닌 사람들도 열광하게 만드는 새 시대 스포츠 영웅의 모습이다.
김연경이 경기마다 하는 말과 행동은 하나하나가 화제다. 4일 터키와 8강전에서 김연경은 심판의 애매한 판정에 네트를 흔들고 소리를 지르며 항의하다 레드카드를 받아 1점을 내줬다. 승부처에서 팀원들의 사기를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효과는 경기에서 드러났다. 대표팀은 5세트 접전 끝에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쉴 새 없이 동료를 격려하고 심판에게 목청을 높인 김연경의 목소리는 경기 후엔 늘 갈라져 있었다.
8강 진출을 결정지은 지난 2일 조별리그 A조 일본전에서는 그가 후배를 격려하며 지은 표정마저 입길에 올랐다. 눈을 크게 뜬 채 이소영을 쳐다보며 등을 두드리는 모습에 카리스마가 넘친다는 반응이 일본 팬들에게서까지 쏟아졌다. 세터 염혜선은 승리 뒤 “연경 언니가 ‘후회 없이 하자’고 다독여준다. 나 역시 ‘이런 멤버와 또 언제 이렇게 큰 무대에 설까’라는 생각”이라며 김연경의 영향력을 드러냈다.
입이 거칠다는 뜻의 별명인 ‘식빵언니’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김연경은 이전부터 자아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다. 지난해 올림픽 지역예선 러시아전에서도 끌려가던 중에 가진 작전타임 때 “표정이 죽는 중이야! x발 웃어!”라고 동료들의 웃음을 이끌어내며 사기를 북돋는 모습이 중계화면에 잡혔다. 여자선수 인터뷰마다 으레 따라붙는 “남자친구 있느냐”는 질문에는 “운동선수니까 제 실력과 성적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좋다”고 답한다.
허진석 한국체대 교수는 “과거에도 종목과 성별을 막론하고 뛰어난 기량의 선수 중에는 이런 성향이 있었다. 김연경은 (그들에 비해) 오히려 모범적이고 지성적인 선수”라고 했다. 이어 “그런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지, 미디어와 팬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달라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수를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바라보던 과거와 달리 팬들이 김연경의 말과 행동을 독특한 자기표현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설명이다.
여성학자 백소영 강남대 교수는 ‘김연경 신드롬’을 여성 선수를 향한 시각의 변화와 연관지어 해석했다. 선수의 성별보다 뛰어난 기량에 먼저 주목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그는 “과거에는 선수를 바라볼 때 여성이라는 성별에 먼저 방점을 찍었다. 거친 행동이나 말을 하면 많은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며 “현대로 올수록 성별을 벗어나 선수로서 능력을 더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김연경이 좋은 사례”라고 했다.
조효석 허경구 기자, 도쿄=이동환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