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서 대출도 안돼”… 서민 울리는 ‘시세 80%’ 분양가

입력 2021-08-06 00:01

“시세의 80% 수준으로 분양가를 세운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1년 전 8·4 대책을 발표하면서 국토교통부는 공공재개발·재건축을 통해 공급되는 주택의 분양가와 관련해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는 민간 규제완화 대신 공공 중심의 주택공급 기조를 밝혔고, 공공개발로 공급되는 주택에 대해 저렴한 분양가를 강조했다. 공공재건축·재개발로 신규 공급되는 아파트에는 시세의 80% 수준을, 3기 신도시 등 신규 공공택지 개발로 나오는 아파트는 시세의 60~80% 수준을 약속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이 꼬여버렸다. 집값과 전셋값이 두 자릿수 비율로 뛰면서 정부가 약속했던 ‘저렴한 가격’이 무색해진 것이다. 너무 오른 나머지 시세의 80%를 적용하더라도 중도금 대출조차 받지 못하는 지역이 속출했다.

5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아파트 가격은 1년 전보다 18.19% 올랐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 폭은 18.48%로 더 높았다. 정부가 약속한 ‘시세 80%’ 수준의 분양가를 적용해도 이미 한참 가격이 급등했던 지난해 시세와 비슷한 수준이 됐다.

시세는 올랐는데 중도금 대출 기준 등 각종 규제는 제자리걸음이다 보니 일부 지역에서는 공공개발인 데도 불구하고 중도금 대출이 안 나올 정도의 분양가(추정치)가 나오고 있다. 공공재개발 시범사업 후보지인 흑석2구역(서울 동작구)과 신길1구역(서울 영등포구)에서는 최근 주민설명회 과정에서 전용면적 84㎡ 아파트의 예상 분양가가 각각 14억3000만원, 11억3000만원으로 제시됐다. 2017년 8·2 대책 이후 분양가 9억원 초과 주택에 대해서는 중도금 대출이 금지됐다. 따라서 대출 없이 10억원 넘는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현금 부자용 공공재개발이 된 셈이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공공재개발의 경우 시장 참여를 높이려고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배제해주다 보니 분양가가 다소 높게 나오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는 신규 공공택지 역시 고분양가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 사전청약 접수 중인 성남 복정1지구의 경우 전용면적 59㎡ 아파트 예상 분양가가 6억7600만원으로 책정됐다.

국토부는 “위례신도시 등 인근 신축과 비교할 때 비싼 가격이 아니다”는 입장이지만 무주택 실수요자가 부담하기엔 여전히 분양가가 높다는 평가가 많다. 게다가 실제 분양 시점까지 부동산 가격 상승이 계속될 경우 분양가가 현재 예상치보다 더 치솟을 수 있다. 분양가의 두 축은 땅값과 건축비다. 최저임금과 원자재가격 상승 등으로 건축비가 오르면 분양가 상승 폭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국토부 관계자는 “분양가상한제 적용 주택에 대해서는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물가 상승률 범위 내에서 분양가를 통제할 것”이라며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주택 사업자가 그에 맞춰 적절한 규모로 분양가를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럴 경우 LH 등이 손해를 떠안아야 하는 구조다. 지난해 결산 기준 LH의 부채는 총 129조7451억원에 달한다.

집값뿐 아니라 전셋값도 오르면서 공공이 공급하는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등의 임대료 시세 역시 상당 부분 상승이 불가피하다.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은 시세의 85~95%로 임대차를 지원하는데 지난 1년간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12.84% 올랐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