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금융위원장으로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내정되면서 코로나19 이후 풀린 돈을 거둬들이는 ‘금융불균형 정상화’에 속도가 붙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고 후보자는 최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제시하는 등 전형적인 ‘매파’(통화 긴축) 인사로 분류된다. 앞으로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과 맞물려 가계부채 관리 등 금융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관측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5일 금융위원장 후보자로 고 위원을 지명했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브리핑에서 “고 후보자는 거시경제와 금융 전반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경제·금융 위기 대응 경험을 바탕으로 코로나19 금융지원, 가계부채 관리 등 현안에 차질 없이 대응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 후보자는 금융위 사무처장(2013년) 등을 지낸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이다. 2003년 신용카드 사태와 2011년 저축은행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사태를 주도적으로 처리하며 ‘소방수’ 역할을 맡았다. 지난달 금통위에서는 ‘금리를 0.25% 포인트 인상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유일하게 제시했다. 과도한 부채가 금융 시스템을 위협한 사건을 잇달아 처리한 경험이 매파적 성향을 띠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6년 금융위원장 추천으로 금통위원에 선임된 뒤 2020년 이주열 한은 총재 추천을 받으면서 사상 처음 금통위원을 연임하기도 했다.
이번 인사로 ‘질서 있는 정상화’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은은 그동안 연내 금리 인상을 여러 차례 시사했지만 시장에서는 내년 대선 등을 이유로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적지 않았다. 자영업자 등 금융 약자층이 연쇄 타격을 입을 경우 민심이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 후보자 발탁으로 통화정책과 금융정책 공조 아래 금융불균형 해소 작업이 가속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의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유동성 회수가 필요한 상황이다. 금리는 인상하되 코로나19 피해 계층이나 서민을 위한 금융 안전망을 강화하는 방식의 협력 구조가 짜이게 될 전망이다.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 개정안 등으로 갈등했던 한은과 금융위의 공조도 원활해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최근 떠오른 암호화폐(가상화폐) 규제도 고 후보자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그는 2013년 한 언론 기고문에서 “금융 시스템 안정과 금융소비자 보호 앞에서는 비트코인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고 후보자는 “코로나19 위기의 완전한 극복, 실물·민생 경제의 빠르고 강한 회복을 위해 금융지원을 적극 추진하겠다”면서도 “가계부채, 자산 가격 변동 등 위험 요인을 철저히 관리하면서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 당국 내부 사정에 밝은 분이 수장으로 오게 됐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금융위원회는 신임 금융감독원장으로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 대사를 임명 제청했다. 정 대사 역시 금융위 부위원장(2016년) 등을 두루 지낸 경제 관료 출신으로, 고 후보자와 행정고시 28회 동기다. 정 대사는 “현시점에서 금융감독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을 재정립하겠다”며 “법과 원칙에 기반한 금융감독에 주력하고, 사후 및 사전 감독을 조화롭게 운영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후보자
△서울(59) △경복고·서울대 경제학과·미국 아메리칸대 경제학 박사 △금융위 상임위원·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정은보 금융감독원장 후보자
△경북 청송(60) △대일고·서울대 경영학과·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경제학 박사 △금융위 부위원장·한·미 방위비분담 협상 대사
조민아 강준구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