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에스더 집사님은 미국교회 소속 교인이지만 가끔 우리교회에 오셨다. 남편은 미국인인데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당신도 폐암 선고를 받았다.
2005년 어느 날이었다. 심방을 갔는데 고 집사님이 이런 부탁을 했다. “목사님, 말레이시아에 아는 선교사님을 통해 유치원과 교회를 짓고 봉헌예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 대신 말레이시아 봉헌식에 참여해 주시고 설교해 주셨으면 해요.”
어쩌면 그분의 마지막 부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당시 말레이시아는 알래스카에서 시애틀, 서울, 방콕을 거쳐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출발하기 3일 전 갑자기 감기몸살이 왔다. 다행히 출발하는 날은 열이 떨어졌지만 상태가 좋지 않았다. 알래스카에서 비행기를 타고 3시간 반 걸려 시애틀에 도착했다.
대한항공 카운터에 가서 탑승권을 받으려는데 나이가 좀 있으신 직원이 물었다. “목사님이신가요.” “아니, 어떻게 아셨어요.” “마침 비즈니스 클래스가 하나 남는 것이 있는데 그것 타고 가세요.” ‘어떻게 처음 와 본 도시, 시애틀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어쨌든 평생 타보지 못했던 비즈니스 클래스 혜택을 받으니 주님께 너무 감사했다.
한국 도착 1시간 전부터 좌석 위쪽에서 작은 물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비행기가 이런 경우도 있나.’ 공짜 좌석이라 그냥 컵을 갖다 대놓고 물방울을 받았다.
그냥 두면 항공사 이미지가 떨어지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공항에 내려 카운터에 알려줬다. 공항에서 3시간 대기한 후 방콕행 비행기를 타려는데 항공사 매니저가 불렀다.
“시애틀에서 오실 때 불편하게 해 대단히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것 받으시죠.” 방콕행 비즈니스 클래스 티켓이었다. 어떻게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있나 싶었다. 그때 힘들어도 사명을 위해 묵묵히 순종하면 하나님은 생각지도 못한 세미한 부분까지도 챙기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래스카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힘든 일도 있었다. 2006년 눈 내리는 10월 어느 날이었다. 한 집사님 가정이 사택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사택은 2층 집이었다. 평소에는 추워서 열어놓지 않던 창문을 열었다. 청소하면서 환기했다.
우리 부부는 집사님이 도착해서 1층으로 내려갔다. 첫째와 둘째 아이는 2층에서 우리를 내려다 봤다. 그리고 창문 방충망을 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그런데 둘이 한꺼번에 치니까 그만 방충망이 떨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아이 둘이 창문 밖에 매달렸다. 눈앞에 믿을 수 없는 아찔한 순간이 벌어졌다. 첫째 아이는 힘을 다해 매달려 있어서 다행히 구했다. 그 추운 날씨에 창틀에 아이가 매달린 자체가 기적이었다.
문제는 둘째 아이였다. “쿵.” 그만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졌고 머리부터 부딪히고 말았다. 둘째 아이를 안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이는 뇌 손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날부터 아이의 옷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기도했다. “주님, 이 아이가 다시 이 옷을 입게 해주세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알래스카에 왔잖아요. 우리 가정에 왜 이런 고통을 주시나요. 하나님, 제발 우리 아이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병원에서, 제단에서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3일 만에 둘째 아이는 숨을 거두고 하늘나라로 갔다.
나와 아내는 큰 절망에 빠졌다.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지난 7년을 아프리카에서 풍토병에 걸려가며 선교했다. 뉴질랜드의 안식년까지 포기한 채 추운 땅에 와서 선교와 목회를 했다. 그런데 아들을 잃고 나니 참담했다.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아이의 장례를 마쳤다. 마음을 추스르려 LA 인근에 2주 동안 내려갔다. 나와 아내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만 흘렀다. 아내는 숙소에서 멍하니 울기만 했다.
혼자 밖으로 나와 길을 걸었다. 시골교회가 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예배당, 조명이 꺼진 어두운 예배당에 앉아서 울었다.
“하나님, 하나님 마음이 너무 아파요. 가슴이 막힐 정도로 너무 아파요.” 그런데 그때 스포트라이트 조명이 비추는 것처럼 한 줄기 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주님의 음성이 들렸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마음을 내가 안다. 아들을 잃은 안타까움이 바로 내 심정이란다. 낙심하지 마렴. 너의 아들 유빈이는 지금 나와 함께 천국에 있단다. 사랑하는 상훈아. 앞으로 네가 만지는 곳마다 내가 치유하고 역사할 거야.”
기도 중 예수님의 모습과 아이가 함께 미소 짓는 모습을 봤다. 그 순간 평생 느껴보지 못한, 말할 수 없는 평안함이 밀려왔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함이었다. 그렇게 찢겼던 마음은 기적같이 치유됐다. 하나님께서 아내의 마음도 만져주셔서 기적같이 치유해 주셨다.
이렇게 고난을 겪고 2009년 알래스카의 첫 한국감리교회인 알라스카예광감리교회 새성전에 입당했다. 그리고 에스키모선교센터를 봉헌했다. 7년 사역은 그렇게 마무리했다. 이후 하나님은 새로운 길을 열어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