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라이프] 민트초코·로제·들기름… ‘민초단’ ‘할매니얼’이 세상을 바꿨다

입력 2021-08-08 20:57
올해 식품·외식업계를 관통한 키워드는 세 가지다. ‘민트초코, 로제, 들기름.’ 이 세 가지를 각각 활용한 레시피가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서 인기를 끌면서 관련 업계가 다양한 신제품으로 화답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민초단’이 이겼다

모델들이 이마트 성수점에서 민트초코 제품들에 둘러싸여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달 열흘 동안 오리온, 롯데제과 등의 민트초코 스낵류 신상품 8종을 할인 판매하는 ‘민트초코 모음전’을 진행해 호응을 얻었다. 이마트 제공

대세 중 대세는 민트초코다. 8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유난히 더운 올여름 ‘시원한 맛’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면서 한정판 민트초코맛 제품 출시가 많아졌다. 이마트에 따르면 지난 1월부터 지난 1일까지 7개월 동안 민트초코 관련 상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73.6% 신장했다. 이마트는 최근 민트초코 스낵류 신상품 8종을 할인 판매하는 행사를 진행해 큰 호응을 얻었다.

‘민초단’을 상표로까지 출원한 오리온은 적극적으로 민초 제품을 내놨다. 오리온에 따르면 냉장 디저트 브랜드 ‘초코파이하우스’가 지난 6월 한정 출시한 ‘민트초코파이’는 지난달 조기 완판을 기록했다. 민트초코파이가 초코파이하우스 브랜드 매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다. 지난달 출시한 ‘오리온 민초단’ 4종(초코파이情, 초코송이, 다이제씬, 다이제볼 민트)은 출시 후 “한정판이 아닌 상시 판매를 희망한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오리온은 2019년 SNS 콘텐츠로 가상의 ‘민트초코맛 초코송이’ 등을 소개한 이력이 있다. 온라인에서 가상으로 즐기던 제품이 소비자의 성원에 힘입어 실제 출시까지 이어진 셈이다.

여름이 시작되고 최근 약 2개월 동안 오리온을 포함해 주요 제과업계에서 출시한 민트초코 제품만 7개에 이른다. 최근엔 동서식품이 ‘오레오 민트초코 샌드위치 쿠키’를 출시했다. SPC 던킨도너츠가 8월 선정한 ‘이달의 도넛’도 ‘민트초코도넛’이다. 파리바게뜨는 지난 5월부터 마카롱, 도넛, 케이크 등 다양하게 구성된 ‘쿨 민초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롯데제과는 4월부터 지난달까지 4종의 민트초코 제품을 내놨다.

민트초코 제품 출시가 늘고 매출이 급증한 데는 이 맛에 열광하는, 이른바 ‘민초단’의 영향이 커진 이유도 있다. 소수가 공유하던 팬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유명인들까지 동참하면서 최근 1년 사이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게 됐다.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는 맛이라는 점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가, 현재는 ‘인증하고 싶은’ 일종의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으로 소비되고 있다.

신제품 출시에 보수적인 식품업계가 민트초코맛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것은 그만큼 ‘민초’가 대중화됐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식품업계 한 관계자는 “민트초코맛 제품이 나오면 수집하는 분들이 있다. 맛 비교가 까다롭기 때문에 긴장도 많이 된다”면서도 “기대되는 맛으로써 ‘민트초코’가 식품업계에서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외식업계 사로잡은 부드러운 맛 ‘로제’


올해 외식업계의 핫한 메뉴 이름 앞에는 ‘로제’가 붙은 게 많다. 로제 파스타, 로제 떡볶이, 로제 볶음면, 로제 닭갈비, 로제 마라샹궈…. 토마토소스나 고추장을 기본으로 한 음식에 우유나 크림을 섞어 만들면 ‘로제’라는 수식어를 가져갈 수 있다.

로제가 들어간 음식은 MZ세대(1980~2000년대생)가 특히 열광하는 외식 메뉴로 꼽힌다. 배달음식 전문점 중에는 아예 식당 이름에 ‘로제’가 붙는 경우도 적잖다. 특히 ‘로제 떡볶이’를 시그니처 메뉴로 삼은 곳들이 많다. 외식업계 한 관계자는 “로제 떡볶이가 메뉴에 있으면 일단 한 번은 사 먹어 보고 싶다는 소비자들이 적잖다”며 “로제를 전면에 내걸고 하는 곳들은 가장 트렌디 한 메뉴로 단기간에 승부를 보려는 곳”이라고 분석했다.

요기요가 지난 5월 분석한 주문 데이터에 따르면 로제 메뉴 수는 전년 동기 대비 8배 이상 증가했다. 지난 2~3월 메뉴 등록 수는 2.1배 늘었고 포장 주문 수는 3.2배 증가했다. 로제 메뉴 중 가장 많이 팔린 것은 ‘로제 떡볶이’였다.

식품업계도 로제 열풍에 올라탔다. 청정원은 최근 프랑스식 ‘비스크 로제 스파게티 소스’를 출시했다. 게, 새우 등 갑각류와 버터를 함께 끓여 만드는 프랑스 정통 방식의 비스크 소스를 로제 타입으로 만들었다. 고급스러운 느낌의 비스크를 로제 소스 스타일로 만들어 트렌드를 공략했다.

해태제과는 떡볶이맛 스낵 ‘신당동떡볶이’의 확장판으로 ‘신당동 로제떡볶이’를 내놨다. 출시 이후 15년 만에 로제떡볶이 맛으로 시즌2를 열었다. 프레시지, 마이셰프, 테이스티나인, 아워홈 온더고 등 밀키트·도시락 업체들도 다양한 로제 메뉴를 판매 중이다.

‘들기름’에 사로잡힌 할매니얼

현대홈쇼핑 오뚜기 고기리 들기름 막국수 판매 영상. 현대홈쇼핑 제공

상반기 식품업계 신제품 가운데 ‘들기름’이 들어간 제품군이 형성됐다는 것도 색다른 대목이다. 들기름은 면류와 만나서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다. 덜 자극적이고 다소 심심한 맛인 ‘들기름’이 어느새 면요리 제품군에서 한 카테고리를 형성하게 됐다.

올해 등장한 ‘들기름 막국수’ ‘들기름 메밀국수’ 등은 그동안 인기 면류 제품들과는 확연히 결이 다르다. 오랫동안 면요리 제품은 매운맛을 다양하게 변주하는 식으로 등장했다. 매운맛이 장악한 시장에서 전혀 결이 다른 들기름 막국수는 ‘없어서 못 구하는’ 제품이 됐다.

포문을 연 곳은 오뚜기다. 지난 3월 경기도 용인시 맛집 ‘고기리 막국수’와 협업해 출시한 ‘고기리 들기름막국수’는 오뚜기몰 등 온라인과 라이브쇼핑 등에서만 판매되는데도 빠르게 매진되며 지금까지 100차례 완판을 기록했다. 제품 개수로 환산하면 약 30만개가 제한된 유통 채널에서 4개월여 만에 팔린 셈이다.

‘들기름 막국수’의 인기는 ‘할매니얼’(할매 입맛+밀레니얼)의 활약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흑임자에 빠졌던 할매니얼이 올해는 ‘들기름’으로 넘어온 것이다. 인스타그램에 ‘#들기름막국수’로 검색하면 2만6000개가 넘는 게시물이 나온다. 들기름막국수 레시피, 들기름막국수 제품 시식 인증샷 등이 MZ세대를 중심으로 공유되고 있다. 오뚜기에 이어 풀무원(‘들기름 메밀막국수’)과 CJ제일제당(들기름간장 비빔 유수면)도 들기름 인기에 합류했다.

식품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소비자들 사이에서 자극적인 배달 음식에 물렸다는 반응이 많아졌다”며 “들기름 막국수의 인기는 ‘덜 자극적이고 편안하고 건강한 맛’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