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남편을 만나 졸업 후 밥 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방법조차 잘 모르는 채 아무 생각 없이 결혼했다. 언젠가 집에 온 친구가 “혜진아, 너희 집은 옷장 문이며 싱크대 문들이 왜 다 열려있니?” 하기에 “어차피 쓸 때 다시 여는데 굳이 닫을 필요가 없잖아?” 했다. 집안은 항상 발 디딜 틈 없이 지저분했다. 게다가 내가 예쁘다고 느끼면 상대도 예쁘다고 해야 하고, 내가 맛있으면 상대도 맛있다고 할 때까지 내 뜻과 같은 대답을 강요했다. 그러다 보니 ‘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라는 뜻의 ‘답정너’라는 별명도 붙었다.
집안일도 버거운데 아들 둘까지 키우는 게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 자식이고 뭐고 다 싫고 힘들어 할 때 유학 갔다 온 친구들 소식이 하나, 둘 들리며 노래에 대한 미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친구들의 멋진 삶을 보니 당장 비행기를 타고 유학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앞에 밝았던 성격은 점점 어두워지고 우울함에 화병까지 생겼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하나님은 살아 계신지, 예수님이 누구인지 관심도 없었는데 답답한 상황이 되니 진짜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내 상황을 바꿔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때 아는 동생이 성경 공부를 해 보자고 했다. 그렇게 만난 한마음교회 일꾼에게 답답한 심정을 다 털어 놓았고 많은 질문도 했다.
요한복음을 읽다가 예수님은 배 고프고, 눈물을 흘리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간음한 여인도 용서해 주는 인격을 가진 분이라면 나 혼자 죄인이라도 만나러 오셨겠구나 싶었다. 그러다 고린도전서 15장의 ‘성경대로’란 단어를 보는 순간 대학교 때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 독창회를 보러 갔던 기억이 퍼뜩 났다. 한낱 음악회에도 언제, 몇 시에, 어디서 연주를 한다고 미리 홍보하는데 하물며 전능자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시는데 그냥 오실 리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참 많이 불렀던 이사야 9장 6절 말씀을 가사로 한 메시아 찬양 12곡의 ‘우리를 위해 한 아기가 나셨다’라는 찬양이 생각났다. 예수님은 예언대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성자 하나님이심을 정확히 알게 됐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게 되자 요한일서 4장의 사랑이 온 몸에 부어졌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그 자리에 앉아 왕 노릇 하던 나, 이런 내가 뭐라고 죄 없는 분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는지 그 큰 사랑에 눈물만 나왔다. “하나님, 어찌 합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무시하고 짓밟은 것도 모자라 나를 위해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마저 믿지 않았어요. 용서해 주세요.” 온 맘으로 고백했다. 깨든지 자든지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 되시니 힘들었던 집안 일이 즐거워졌고 귀찮기만 하던 아이들도 너무 사랑스러웠다.
어느 날 술, 게임, 텔레비전에 빠져 방황의 삶을 살던 어느 언니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지금은 공동체 안에서 신실한 일꾼이 됐다. 교회 내에 성악을 전공한 분들이 모여 ‘쁘리모 아모레(첫사랑)’라는 중창단을 만들어 병원, 관공서 등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찬양을 하고 복음을 전한다. 부활절에는 신촌역에서 시민들과 함께 기쁘게 찬양을 한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한 영혼이라도 살려야 한다는 사명이 내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됐다. 예수님께서 지금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주님의 사랑으로 영혼들에게 오늘도 다가갈 것이다.
곽혜진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