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그것은 나의 영광

입력 2021-08-06 04:05

거듭해서 감사하다고 말해도 부족한 것 중 하나는 타인의 책에 추천사를 쓰는 일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그것이 훌륭한 책인지 아닌지에 대한 자의적 판단을 매우 즉각적이고 냉정하게 내려버린다. 하지만 그 본능을 잠시만 접어두고 내가 읽는 이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를 잠깐만 생각하면 바로 여러 가지 귀한 보석 같은 것들만이 떠오른다. 이를테면 시간이다. 길고 긴 낮과 밤의 시간, 그것을 채우는 저자의 고민과 성찰, 기쁨과 슬픔, 확신과 불안, 무지개 같은 마음들, 그리고 그것을 최선으로 받아 책으로 담아내는 편집자와 디자이너와 출판사 사장의 헌신.

추천사 부탁을 받을 때마다 나는 그 책이라는 귀한 물건에 내 글과 이름이 올라간다는 생각에 영광스럽다는 기분부터 느낀다. 모든 부탁에 응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지금까지도 드는 최초의 생각은 영광스러움이다. 그런데 내가 쓴 추천사 중에 가장 부끄러운 추천사가 존재한다. 쓸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책으로 받아들고는 너무 창피해 얼굴이 새빨개졌었다. 너무 내 얘기만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명색이 추천사라면 책이 주인공이어야 하거늘, 왜 책을 읽은 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던 건지. 내가 여태 쓴 추천사 중 가장 길었던, 그리고 가장 부끄러웠던 글이다.

2년이 지난 얼마 전, 그 책의 출판사 대표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책의 원래 소개글을 내 추천사의 일부로 바꾸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잠깐 동안 너무 여러 가지 감정에 휩싸였다. 대체 왜? ‘보글보글’ 속 캐릭터처럼 물음표를 뻐끔거리다가 그 생각을 철회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높은 파도처럼 솟구쳤다 납작해졌다. 또 이런저런 바보 같은 짐작들을 했다. 그러다가 결국 나는 영광스럽다고 느꼈다. 역시 귀한 책에 내가 각인되는 일은 영광이었다. 아무리 부끄러운 글이더라도, 누가 비웃더라도, 읽어주지 않아도, 바로 잊혀지게 되더라도….

요조 가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