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은 언론재갈법”… 논란의 ‘5대 독소조항’

입력 2021-08-05 00:08 수정 2021-08-05 00:08
게티이미지

더불어민주당이 논란 한 가운데에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 강행 처리를 시사하면서 국회가 폭풍전야 분위기다. 민주당은 언론 처벌이 아닌 피해자 구제에 초점이 맞춰진 법안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야당 등 반대론자들은 민주주의 기본권인 언론 자유를 크게 후퇴시키는 악법이라고 비판한다.

학계, 법조계, 언론계 등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부 조항에는 우려 목소리가 크다. 중견언론인 모임인 관훈클럽은 창립 이래 64년 만에 처음으로 비판 성명을 냈다. 하지만 민주당은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은 “거대여당의 의회 폭거”라며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가짜뉴스 피해 구제법’일까, ‘언론 재갈 물리기법’일까. 독소 조항으로 지목되는 조항 5개를 중점적으로 살펴봤다.

‘가짜뉴스 피해 구제’ vs ‘언론 길들이기’

법안에서 문제가 제기되는 조항은 크게 다섯 가지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고의·중과실 추정, 구상권 청구 요건, 정정보도 청구 표시, 기사열람차단 청구권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징벌적 손배제) 도입은 전문가들이 가장 문제가 되는 조항 중 하나로 꼽는 부분이다. 언론 자유를 제약할 수 있다는 이유다. 문재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일 “징벌적 손배제를 발전시킨 미국조차 언론에는 이를 적용하는데 매우 신중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1호 헌법연구관이자 헌법전문가인 이석연 전 법제처장도 “우리나라는 형사처벌과 민사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완비돼 있는데 이런 법을 만드는 것 자체가 헌법을 경시하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개별 법안으로 입법한 사례를 전 세계적으로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징벌적 손배제 도입의 명분을 약화하는 근거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언론보도 피해에 징벌적 손배제를 별도로 규정한 사례는 찾지 못했다’고 했다.

손해배상액 산정 근거 역시 빈약하다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민주당은 언론사 매출액과 연계해 손해액을 산정했다. 고의·중과실이 인정되면 산정된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할 수 있게 했다. 매출액이 없는 언론사여도 최대 1억원까지 배상해야 한다. 문 교수는 “피해자가 손해를 입은 만큼 배상하는 것이 우리 민법의 원칙”이라며 “매출액과 연계한 개정안 내용은 가해자 사정에 따라 계산하는데, 이런 법은 있을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형법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있고, 민사상 손해배상청구 체계가 갖춰진 것을 감안할 때 이중처벌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장윤미 변호사는 “언론사가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면서 기자들이 형사처벌을 받는 상황이 와선 안 된다.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처벌 폐지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김용민 민주당 수석최고위원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도 전문가들이 우려하는 대목 중 하나다. 취재과정에서 법률을 위반한 행위 등이 인정되면 언론사에 고의·중과실이 있다고 추정된다. 고의·중과실로 허위·조작보도를 한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이 된다. 정치인 등 공적 인물이 보도 대상이면 ‘악의’가 있을 때만 인정된다.

전문가들은 고의와 악의, 허위보도와 조작보도 등 판단이 모호한 기준을 적시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의와 악의를 어떤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 또 사후적으로 사실이 아니게 된 보도에도 허위·조작을 인정할 것인지 등의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경우 고의·중과실이 없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은 언론사에 돌아간다. 이것은 ‘피해자 입증 책임 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소위원인 김승원 민주당 의원은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의 피해 입증이 선행된 다음에 언론사에 입증 책임이 넘어가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최종적으로는 가해자로 추정된 언론사가 ‘가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이 전 처장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람이 입증 책임을 지는 게 근대법의 기본 원리”라고 강조했다. 이 전 처장은 “언론 기능에는 속보성이 있다”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보도했지만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경우들이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보도 과정, 사실에 접근하는 움직임까지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진 한양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공인과 사인을 분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인에 대한 ‘악의’가 없었다는 것을 입증하기는 상당히 어렵다”며 “정치인 등이 ‘전략적 공세 소송’을 벌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언론은 위축되는 악순환 속에서 어떻게 언론개혁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구상권 청구 요건에도 전문가들은 우려를 나타냈다. 기자 개인에게만 고의·중과실이 인정될 때 언론사가 손해배상 책임을 기자에게 물을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김 수석최고위원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자 개인은 잘못된 보도에 경한 과실이 있더라도 면책될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언론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강화했으니 기자 개인은 자유로워졌다는 의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부정적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무원이 공무 수행 중 실수했을 때 국가가 배상하도록 돼 있다”며 “구상권 청구 조항은 문제가 생겼을 때 기자가 개인적으로 책임을 지라는 뜻인데, 기자 입장에서는 위축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 전 처장도 “국민이 궁금한 것을 취재하려다가도 기자들은 손해배상 책임이 본인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될 것”이라며 “일선 기자들에 상당한 압박을 가하는 조항”이라고 했다.

정정보도 청구 표시, 기사열람차단 청구권에는 찬반이 엇갈리는 분위기다. 낙인찍기 효과가 있다는 비판과 함께 피해자 구제를 위해 용인될 수 있다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장 교수는 “정정보도 청구 표시는 사실 기재일 뿐이고, 기사열람차단 청구권은 ‘잊혀질 권리’의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허위·조작보도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1인 미디어 및 유튜버를 포함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민주당은 올해 초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통해 1인 미디어 및 유튜버의 가짜뉴스를 엄단하겠다고 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지난해 7월 발의됐지만 아직도 상임위에서 계류 중이다.

거센 비판 속 강행하는 여당 의도는

많은 우려에도 민주당은 표결 처리를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법안을 민주당이 왜 이토록 급하게 밀어붙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성토한다.

일각에서는 언론개혁의 당위를 떠나 대선을 앞둔 민주당의 정치적 판단이 깔려 있다고 본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민생에서는 중도를 표방하면서 검찰·언론개혁 같은 당위적 이슈들을 내세워 지지층에 소구하려는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문재인정부의 과제를 달성하고 법사위원장이 국민의힘에 넘어가기 전에 처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야당은 절차적 흠결이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문체위 소속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징벌적 손배 상한을 5배로 올린 수정안을 갑자기 들고 오더니 소위에서 통과시켜버렸다”며 소위 통과를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달곤 국민의힘 의원도 “전체회의 일정을 잡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이것은 의회 폭거”라고 맹비난했다.

민주당은 충분한 논의를 거쳤다고 주장한다. 김 의원은 “5회의 법안소위를 거쳤고, 마지막 소위에서도 7시간에 걸쳐 3회독을 했다”며 “또다시 소위를 열자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 전 처장은 “언론 자유는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이루는 기본권”이라며 “이를 제한하는 법안을 만들 땐 상당한 신중을 기해야 하는데 일반 법안 다루듯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법안을 만든 사람들에게 헌법에 대한 인식이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며 “헌법적 가치를 심히 훼손하는 폭거”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여론조사 결과를 앞세운 데 대해서도 “국가의 기본질서를 이루는 헌법 가치와 정신은 여론이나 다수결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언론개혁은 처벌이 아닌 자정작용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교수는 뉴욕타임스의 혁신 사례를 예로 들며 “언론개혁은 내부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옳다”며 “소비자와 언론사의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는 쪽으로 정치권이 독려해야 한다”고 했다.

이가현 이상헌 강보현 기자 hyun@kmib.co.kr